호는 우창(于蒼). 한말의 무신인 태휴(泰休)의 아들이다.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전문부를 졸업하였다.
이후 중국 상해로 건너가 여운형(呂運亨)과 함께 고려교민친목회를 조직하고 유인신문(油印新聞)인 『아등(我等)의 소식』을 발간하는 한편, 1919년 임시정부 교통총장으로 있었다.
1924년 귀국하여 경영난을 겪고 있던 『조선일보』를 송병준(宋秉畯)으로부터 8만 5000원에 인수하여 신문의 면목을 일신하였다. 사장에는 이상재(李商在)를 추대하고 자신은 부사장을 맡았다가 1927년이상재가 별세하자 사장에 취임하였다.
1931년까지 사장에 재직하는 동안 서울 견지동에 새 사옥을 지었고, 1929년부터 시작한 귀향남녀학생문자보급운동은 일제강점기에 신문사가 벌인 민중운동으로는 성공적인 사례였다.
또한, 신간회가 창립될 때에 그 간부직을 맡았고, 아버지를 설득하여 많은 돈을 써가면서 민족지를 키우는 데 노력하였다. 광복 후 1949년부터는 주중국대사를 지내기도 하였다.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