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은 신석정(辛錫正). 아호는 석정(夕汀 · 釋靜 · 石汀) 외에 석지영(石志永) · 호성(胡星) · 소적(蘇笛)을 쓰기도 하였다.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부안 출신. 아버지는 신기온(辛基溫)이다.
부안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향리에서 한문을 수학하였다. 그 뒤 1930년 상경하여 개운사(開運寺) 불교전문강원(佛敎專門講院)의 박한영(朴漢永) 문하에 1년 남짓 불전을 연구하며 회람지 『원선(圓線)』을 편집하기도 하였다. 6·25사변 이후 태백신문사 고문을 지내다가 1954년 전주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였으며, 1955년부터는 전북대학교에서 시론을 강의하기도 하였다.
1961년에 김제고등학교, 1963년부터 1972년 정년퇴직 때까지는 전주상업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였으며, 1967년에는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전라북도지부장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그의 시작활동은 1924년 4월 19일자 『조선일보』에 소적이라는 필명으로 「기우는 해」를 발표하면서 시작되었다.
그 뒤 1931년『시문학』지에 시「선물」을 발표하여 그 잡지의 동인이 되면서부터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로부터 「임께서 부르시면」 · 「나의 꿈을 엿보시겠습니까」 ·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 등 초기 대표작들이 발표되었다. 이 작품들을 모아 1939년에 첫시집 『촛불』에 이어 1947년에는 제2시집 『슬픈 목가(牧歌)』를 간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