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송식

  • 역사
  • 인물
  • 일제강점기
  • 현대
일제강점기 때, 한국광복군 창령참모, 임시정부 주석비서, 임시정부 주화대표단전원위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이칭
  • 이칭진경성(陳敬誠)
인물/근현대 인물
  • 사망 연도1973년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914년
  • 출생지평안남도 안주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박현서 (한양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신송식 사진 미디어 정보

신송식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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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제강점기 때, 한국광복군 창령참모, 임시정부 주석비서, 임시정부 주화대표단전원위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개설

일명 진경성(陳敬誠). 평안남도 안주 출신.

생애 및 활동사항

일찍이 중국으로 가서 1933년 광둥정치군사학교[廣東政治軍事學校]를 졸업하였다.

1936년 중앙육군군관학교 제4분교, 1937년 육군보병학교 간부훈련반을 거쳐 중앙포병 제51단에 소위로 임관, 배속된 뒤, 우창[武昌]·한커우[漢口]·웨양[岳陽] 등의 전투에 참가하였고 창사[長沙]·링난[嶺南] 대회전에서 무공을 세웠다.

1941년 임시정부의 지령으로 충칭[重慶]에서 한국광복군 시안전방사령부(西安前方司令部) 참령참모(參領參謀)에 임명되어 푸양[阜陽]으로 파견되어 일본군점령지구에 대한 초모활동·선전공작·정보수집·유격전 등을 맡았다.

1944년에는 중국중앙군 전시간부훈련 제4단특과총대학원대 한청반(第四團特科總大學員隊韓靑班) 교관이 되어 새로 초모한 사병을 훈련시켜 광복군에 편입시켰다.

1945년 6월 임시정부 주석비서로 활동하던 중 광복을 맞아 교포의 귀국에 노력하다가 1946년 임시정부 주화대표단전원위원(駐華代表團專員委員)이 되었고 1947년 귀국하였다.

귀국 후에는 광복청년회 전위대장을 지냈고, 다시 대만으로 가서 국민당정부 국방부에서 활동하였으며, 1950년 2월 귀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다.

참고문헌

  •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 『대한민국독립운동공훈사』(김후경, 광복출판사, 1983)

  • - 『독립운동사』 6(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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