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부안 출신. 소리에 재질이 있었으나 집안이 가난하여 15세부터 엿장수를 하며 혼자 소리를 외치고 다니며 익혔다. 따라서 좋게 태어난 목과 목구성은 대단하였으나 소리제가 너무 통속적인 노랑목이었고 체계가 없었다.
1933년 명창 전도성(全道成)에게 소리를 배워 비로소 소리의 법도를 터득하였다. 1943년 동일창극단(東一唱劇團)에 입단하여 창극활동을 시작하였고 1941년 조선음악협회 산하의 조선악부에 입단하여 이동백(李東伯) · 박녹주(朴綠珠)와 같은 명창들과 함께 활동하였다. 광복 후에 각종 공연단체를 수행하며 이름을 떨치다가 6·25사변 때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흥보가」와 「적벽가」를 잘 불렀는데 특히 「적벽가」가운데 화용도(華容道) 장면을 잘 하였다. 청이 수리양성(목이 약간 쉰 듯한 소리)으로 성량이 매우 풍부하고 통속적인 기교를 뛰어나게 잘 부려 청중의 인기가 대단하였으나 소리 법도는 그 이름에 미치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