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평산(平山). 호는 자운(紫雲). 평안북도 의주 출신. 신효신(申孝信)의 아들이다.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장원섭(張元燮)·조병준(趙秉準) 등과 창성(昌城)에서 의병을 일으켰고, 1909년에 다시 재기해 창성헌병대를 습격하고 만주로 망명하였다. 그 곳에서 조맹선(趙孟善)·박장호(朴長浩) 등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교육사업에 주력하였다.
1919년 박장호·조맹선·백삼규(白三圭)·조병준·전덕원(全德元) 등이 유하현(柳河縣)에서 조직한 대한독립단에 가입, 활동하였다. 그러던 중 연호 사용 문제로 기원독립단(紀元獨立團)과 민국독립단(民國獨立團)으로 분열되자, 조병준·변창근(邊昌根)·김승학(金承學) 등과 민국독립단에 들어가 활동하였다.
1920년 임시정부 직속으로 광복군 참리부가 조직되자 그에 가담, 내무사장(內務司長)으로서 김승만(金承萬)·김두만(金斗萬)·신언갑(申彦甲) 등과 항일투쟁을 하였다. 한편, 1920년 초부터 『독립신문(獨立新聞)』 발간이 경영난으로 어렵게 되자 안창호(安昌浩)·김승학 등과 자금을 내 독립신문사를 합자회사로 발전시켜 속간할 수 있도록 하였다.
1921년에는 쑤이위안성[綬遠省] 포두중탄(包頭中灘)으로 여러 동지들과 이주하여 농지를 개간, 배달농장(倍達農場)을 경영하며 조병준 등과 의민부(義民府)를 조직, 부총재로 활동하였다. 한편 배달학교와 대종교 포교당을 설치, 청년들에게 항일독립정신 고취에 힘썼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