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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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물
  • 조선 전기
  • 조선 후기
조선 중기에, 현풍현감, 보성군수 등을 역임하였으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 발발하자 의병을 모집해 곽재우군과 연합하여 항쟁한 무신·의병장.
이칭
  • 문암(聞巖)
  • 우수(友叟)
  • 시호충장(忠壯)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이탕개의 난|임진왜란
  • 본관영산(靈山: 지금의 경상남도 창녕)
  • 사망 연도1618년(광해군 10)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천성만호|현풍현감|보성군수
  • 출생 연도1549년(명종 4)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석희 (부산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7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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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중기에, 현풍현감, 보성군수 등을 역임하였으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 발발하자 의병을 모집해 곽재우군과 연합하여 항쟁한 무신·의병장.

개설

본관은 영산(靈山). 자는 우수(友叟), 호는 문암(聞巖). 아버지는 현감 신희수(辛希壽)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83년(선조 16) 이탕개(尼湯介)의 반란을 평정할 때 공을 세우고, 무과에 급제하여 1591년 천성만호(天城萬戶)가 되었다.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천성도(天城島)가 고도(孤島)이므로 김해성(金海城)으로 들어갔다가 성이 함락되자 적의 포위망을 돌파하였다. 합천군수 이숙(李潚), 박진영(朴震英) 등과 더불어 의병을 모집하고, 곽재우군(郭再祐軍)과 합류하여 활약하기도 하였다.

공휘겸(孔撝謙)이 적에게 항복하여 영산에 웅거, 경상도관찰사를 자처하며 위세를 떨치자 단신으로 그의 진영에 잠입하고, 계략을 써서 사로잡았다. 1592년 7월의 영산전투에서도 공을 세워 곽재우의 천거로 현풍현감이 되어 선정을 베풀고, 백성을 안집하여 목민관으로도 영남에 명성을 떨쳤다.

정유재란 때는 창녕의 화왕산성(火旺山城)에 주둔하고 있던 곽재우군에 합류하여 화왕산성전투에서 조전장(助戰將)으로 활약하였다. 난이 끝난 뒤 보성군수을 역임하였다.

죽은 뒤 병조판서로 추증되었고, 창녕의 문암정(聞巖亭), 영산의 도천서원(道泉書院)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충장(忠壯)이다.

저서로는 『문암집』이 있다.

참고문헌

  • - 『선조수정실록(宣祖修正實錄)』

  • - 『수산집(修山集)』

  • - 『화왕입성동고록(火旺入城同苦錄)』

  • - 『영산현읍지(靈山縣邑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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