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12월 14일 이갑성(李甲成)을 중심으로 한 정당통일기성회(政黨統一期成會)와 김여식(金麗植)을 중심으로 한 정당합동준비위원회(政黨合同準備委員會)가 합류하여 서울기독청년회(YMCA)회관에서 결성되었다.
이 정당은 고려사회민주당(高麗社會民主黨)·신조선당(新朝鮮黨)·조선혁명당(朝鮮革命黨)·대한신민당(大韓新民黨)·민일당(民一黨)·조선민주당(朝鮮民主黨)·조선건국협찬회(朝鮮建國協讚會)·한국공화당(韓國共和黨)·삼일당(三一黨)·농민당(農民黨)·대한민정당(大韓民政黨)·조선해방동맹(朝鮮解放同盟)·대한인민정치당(大韓人民政治黨) 등 22개 정당의 합동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정강은 ① 민족민주주의적 자주독립국가의 건설, ② 전민족의 단결, ③ 부강한 민족국가 건설을 위한 국가계획경제의 수립, ④ 반민족적인 일체사상의 배격, ⑤ 세계평화에 기여할 것 등이다.
초대 부서의 구성은 총무 이용(李鏞)·이규갑(李奎甲)·김여식·김석영(金錫瑛)·박근실(朴根實)·김호찬(金浩燦)·정재하(鄭在夏) 등이었고, 각 부서장은 각각 2명씩으로 구성되었다.
그러나 이 신한민족당은 1946년 4월 18일한독당(韓獨黨)·국민당(國民黨)·신한민족당의 3당 합동성명 발표 이후 합동파와 합동반대파로 분열되어 합동파는 3당 합동당으로, 합동반대파는 1946년 9월 15일에 신진당(新進黨)을 결성함으로써 붕괴되었다.
광복 이후 우후죽순 격으로 난립된 정당과 정치단체들이 그들 각자의 독자적 존립의의를 상실하게 되자 이들은 각 정당통일전선 혹은 정당통합운동의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는데, 그 결과 결성된 이 신한민족당은 독립촉성국민회(獨立促成國民會) 등에 참가하면서 좌우대립이 날카로워지던 시기에 끝까지 민족진영의 중요한 일익을 맡았던 정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