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항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조선 전기에, 오위도총부도총관, 자의대부, 통헌대부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시호문효(文孝)
  • 용이(容耳)
인물/전통 인물
  • 본관고령(高靈)
  • 사망 연도1507년(중종 2)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오위도총부도총관|자의대부|통헌대부
  • 출생 연도1477년(성종 8)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재룡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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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전기에, 오위도총부도총관, 자의대부, 통헌대부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용이(容耳). 고령부원군(高靈府院君) 신숙주(申叔舟)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통례원봉례(通禮院奉禮) 신주(申澍)이고, 아버지는 예조참판 신종호(申從濩)이며, 어머니는 의창군(義昌君) 이공(李玒)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7, 8세에 글을 읽은 지 몇 해 만에 『시경』을 배우고, 『황산곡집(黃山谷集)』을 외우는 데 한자도 틀림이 없었다. 14세에 성종의 제1녀 혜숙옹주(惠淑翁主)를 아내로 맞아 순의대부(順義大夫)에 봉해졌다.

부친상을 당하자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였으며, 탈복한 뒤 관직에 돌아와 1499년(연산군 5)에 오위도총부 도총관을 겸하였다. 1501년에 자의대부(資義大夫), 뒤이어 귀후서제조(歸厚署提調)·통헌대부(通憲大夫)에 올랐다.

1504년에 풍원위(豊原尉) 임숭재(任崇載)의 참소(讒訴: 간악한 말로 윗사람에게 고함)로 의금부에 하옥되었으며, 통헌대부가 거두어지고, 궁궐출입이 금지되었다.

이에 두문불출하고 빈객을 맞지 않으며 적막하게 스스로를 지켰다. 중종반정 후 반정에는 가담하지 않았으나 원종공신(原從功臣) 1등에 책봉되고 봉헌대부(奉憲大夫)에 올랐다. 시호는 문효(文孝)이다.

참고문헌

  • - 『중종실록(中宗實錄)』

  • - 『이락정집(二樂亭集)』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 『대동기문(大東奇聞)』

  • - 『해동잡록(海東雜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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