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장령, 교리, 사간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이듬해 탁영시(擢英試)에 병과로 발탁되어 사과(司果)에 제수되었다. 그 뒤 정언(正言)을 거쳐 인종이 즉위하자, 헌납(獻納)이 되어 경연에서 기묘사화 때 억울하게 처단된 조광조(趙光祖)의 신원을 진언하였다. 명종이 즉위하자 소윤(小尹)의 편에 서서 대윤(大尹)의 거두인 유관(柳灌)·유인숙(柳仁淑) 등을 탄핵, 숙청하였다.
이어서 장령(掌令)·교리(校理)·사간·사예(司藝)·전한(典翰) 등 청요직을 두루 역임하고, 1553년(명종 8) 승정원에 들어가 왕의 측근에서 오랫동안 보필하였다. 그 뒤 예조참의·동지돈녕부사를 역임하다가 노환으로 사임하였다. 음률(音律)·의술(醫術)·서법(書法)에도 밝았다.
참고문헌
- 『중종실록(中宗實錄)』
- 『명종실록(明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소재집(蘇齋集)』
- 『율곡전집(栗谷全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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