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성균관전적, 병조정랑, 지평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486년(성종 17) 진사시에 합격하고, 1495년(연산군 1) 증광시(增廣試)에서 을과로 급제,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에 보임되었다. 이어서 박사에 승진되어 『성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그 뒤 성균관전적·감찰이 되고, 이 해에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어 병조정랑이 되었다.
이어서 부수찬(副修撰)·정언(正言)·부교리(副校理)·지평(持平)을 거쳐, 1503년 장령(掌令)에 올랐으며, 이어 검상(檢詳)·사인(舍人) 등을 지냈다. 이 때 국왕 의복의 장단을 지적하여 연산군의 미움을 사고, 이듬해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개령현(開寧縣)에 유배되었다가 참수되었다. 성품이 강직하고 직언을 잘하여 연산군의 폐정을 자주 지적하였다. 중종 때에 복관되었다.
참고문헌
-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국조방목(國朝榜目)』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모재집(慕齋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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