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성윤(聖潤). 사인(舍人) 심광세(沈光世)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심억(沈檍)이고, 아버지는 심약한(沈若漢)이다. 어머니는 예조판서 이기조(李基祚)의 딸이다.
1662년(현종 3) 진사가 되고 1669년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승문원에 보임되었다가 사관을 거쳐 세자시강원설서(世子侍講院說書)·사서(司書)·정언(正言)·병조낭관 등을 역임하였다. 1680년(숙종 6) 경신대출척 때 장령으로 있으면서 남인인 윤휴(尹鑴) 등의 유배와 민암(閔黯)의 삭탈관작 및 복창군(福昌君) 이정(李楨)과 복선군(福善君) 이남(李柟) 형제의 안치(安置)를 주장하였다.
그 뒤 정언·수찬(修撰)·헌납(獻納)·집의 겸 지제교(執義兼知製敎)·부교리(副校理)·교리·사간·부응교(副應敎) 등의 언관을 두루 역임하였다. 경(經)·사(史)·시(詩)·율(律)에 능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