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통원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조선 전기에, 형조참판, 한성부판윤, 우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사용(士容)
  • 욱재(勗齋)
인물/전통 인물
  • 본관청송(靑松)
  • 사망 연도1572년(선조 5)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대사헌|형조참판|한성부판윤|우의정
  • 출생 연도1499년(연산군 5)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재범 (전 인간문화재, 한학)
  • 최종수정 2025년 11월 18일
포천 심통원 신도비 정측면 미디어 정보

포천 심통원 신도비 정측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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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전기에, 형조참판, 한성부판윤, 우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사용(士容), 호는 욱재(勗齋). 영의정 심회(沈澮)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심원(沈湲)이고, 아버지는 심순문(沈順門)이다. 어머니는 신영석(申永錫)의 딸이다. 영의정 심연원(沈連源)의 동생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어려서부터 천재로 불렸으며, 1537년(중종 32) 별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또한 1546년(명종 1) 문과중시(文科重試)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부응교(副應敎)로 등용된 뒤 시강관(侍講官)으로 임금의 학문을 돕다가 직제학이 되어 조정의 공문서를 도맡아 작성하였다. 그 뒤 병조참지가 되어 국방에도 관여하였다.

1548년 우승지 · 좌승지를 거쳐 경상도관찰사를 지내고, 1550년 예조참판이 되었으며, 이어서 대사헌 · 형조참판 · 한성부판윤을 거쳐 우의정이 되었다. 같은 해 좌의정이 되었다가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이듬해 권력남용과 뇌물을 받은 혐의로 삼사의 탄핵을 받고 사직하였다. 그 뒤 아부한 죄로 관작을 삭탈당하였다.

참고문헌

  • - 『명종실록(明宗實錄)』

  • - 『선조실록(宣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심통원 신도비명(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s://portal.nrich.go.kr)

주석

  • 주1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 卷之六(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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