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도승지, 예조참판, 예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다시 수찬·이조좌랑·검상(檢詳)·지평(持平)·이조정랑 등을 거쳐 1780년 이조참의, 1782년 대사간으로 활동하였다. 그뒤 대사성·이조참판·대사간·부제학 등을 역임하면서 삼사 언론의 개방을 상소하고, 도승지를 거쳐 홍충도(洪忠道: 충청도의 당시 명칭)의 관찰사로 나갔다가 도내의 소요사건으로 1785년 파직당하였다.
다시 이조참판·대사성·대사헌·도승지 등을 거쳐 예조참판이 되었으나 문효세자(文孝世子)의 조제(弔祭: 상례를 치르고 제사함)를 주관하던 중 규례를 그르쳐 파직되었다. 1787년 가례도감제조·도승지를 거쳐 1788년 예조판서가 되었다.
이 때 서원남설의 폐단을 지적하다 유배된 조덕린(趙德麟)·황익재(黃翼再) 등을 용서하는 데 반대하다가, 뜻이 관철되지 않자 사직하였다. 그 뒤 병을 얻어 고생하던 중 왕의 특명으로 예조판서·도총관판율 등에 임명되었으나 노론 벽파의 입장을 지켜, 남인을 등용하는 조정에 출사하지 않았다.
참고문헌
- 『영조실록(英祖實錄)』
- 『정조실록(正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청선고(淸選考)』
- 『풍고집(楓皐集)』(김조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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