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룡놀이 (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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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인류
놀이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부량면과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에서 쌍용과 관련된 일화를 바탕으로 행해지는 민속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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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부량면과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에서 쌍용과 관련된 일화를 바탕으로 행해지는 민속놀이.
내용

김제의 쌍룡놀이는 ‘벽골제(碧骨堤) 쌍룡놀이’라고 하는데, 벽골제는 명금산(鳴琴山)과 포교(浦橋)마을을 막아 노령(蘆嶺)에서 흐르는 자연수를 모은 큰 저수지이다. 이 쌍룡놀이는 현지의 전설과 놀이를 토대로 재현되어 1975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출연하였다.

신라 원성왕은 궤몰상태에 있는 벽골제를 쌓도록 원덕랑(元德郞)을 파견하였다. 원덕랑은 당시 김제태수의 딸 단야(丹若)를 알게 되었고 서로는 어느 사이에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러나 원덕랑에게는 고향에 월내(月乃)라는 약혼녀가 있어 단야를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형편이었다.

큰 축제(築堤)를 할 때에는 처녀를 용추(龍湫: 용소)에 넣어 희생으로 바쳐야 탈이 없는데 원덕랑의 고집으로 처녀를 용추에 바치지 않았더니 사고가 자주 일어났고 둑이 터졌다. 이때 김제태수는 월내가 원덕랑을 찾아 김제로 온다는 소문을 듣고 자기 딸의 행복을 위하여 월내를 제물로 삼을 묘책을 궁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계책을 눈치챈 단야는 오히려 자기가 죽으면 백성들의 원망도 사라지고 제방공사도 순조로울 것이고 원덕랑도 행복하게 될 것이라 믿고 몰래 월내 대신 용추에 빠져 죽었다. 이 연못에는 백룡이 살고 있었고 근처 연포천(連浦川)에는 청룡이 살고 있어 이 두 용을 쌍룡이라 하였다. 백룡은 인명을 수호하고 온순했으나 청룡은 풍우를 일으키고 비바람을 몰고와 인명 피해가 심하였다. 여기에서 백룡과 청룡이 서로 싸우는 쌍룡놀이가 발생하게 되었다.

쌍룡놀이의 제1장은 축제공사의 현장으로 동진강(東津江) 하류 왜뱀이들의 중앙을 인위적으로 막아 벽골제를 쌓았으나 청룡의 심술로 파괴되어 간다. 이때 나라에서 기술자 원덕랑을 보내 7개 주의 백성들을 동원하여 보수의 역사(役事)를 시작한다. 김제태수 유품(由品)은 원덕랑을 도와 인부를 독려한다.

둑을 쌓기 위해 인부들은 토석을 운반하면서 <말밖기노래>를 부른다. “(메김) 어야라 동동 상사도야/(받음)들어라 동동 상사도야(얼럴럴) 상사도야/(받음) 얼럴럴 상사도야/열두자 막을 박을라면 우리네 인부들 욕들 보겠네/떴다 떴다 감독이 떴다 번득 들었다 번득 놓세/힘만 세도 소용없고 소리만 잘하면 제일이다…….”

제2장은 쌍룡의 출현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역사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하늘에 먹구름이 일고 비바람이 치니 인부들은 겁에 질려 창백해지고 불안 때문에 동요가 일기 시작한다. 청룡이 나타나고 주위는 수라장이 된다.

사람들은 “예로부터 큰 공사에는 처녀를 청룡에게 바치는 법인데 원덕랑의 고집으로 바치지 않아 이런 변을 당한다.”면서 원성을 한다. 이때 백룡이 나타나 청룡을 달랬으나 막무가내였고 드디어 싸움이 벌어졌으나 청룡을 당해내지 못하고 쫓겨 사라진다.

제3장은 단야의 희생으로, 청룡은 본성을 드러내어 광란을 부리며 둑을 무너뜨린다. 이때 이속들이 가마에 여인을 태우고 청룡 앞에 놓고 포대를 벗기니 단야의 모습이 드러나 모두 놀란다. 단야는 비통한 자세로 자기 부모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청룡에게 다가서서 “나를 제물로 할 것이니 앞으로 둑을 해치지 말고 잘 보호해 주십시오.”라고 부탁한다. 그 같은 의연한 모습을 지켜본 청룡은 그 의로움에 깊이 감동하여 고개를 끄덕이며 묵묵히 사라진다.

제4장은 단야의 소원무(所願舞) 장면으로, 태수는 달려와 기절한 딸을 끌어안는다. 다행히 기절한 단야가 깨어나고 태수는 잘못을 뉘우치게 된다. 사람들은 경사를 맞아 농악을 치고 <농부가>를 부르며 춤을 춘다. 이 놀이는 전설적인 요소가 강한 도작농경시대 초기에 발생한 향토신사(鄕土神祠)로 추측된다.

영월의 ‘쌍룡놀이’는 1983년 강원도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출연하였던 놀이로 그 전설만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영월군 한반도면 쌍룡리 쌍용양회공장의 채석장이 있는 능선 위에 굴이 두 개가 있었는데 이곳이 쌍룡굴이었다. 원래 이 동네는 용상(龍上) · 용하(龍下) 두 마을로 나뉘어 있는데 용상마을에 한 부자가 살았다. 용상마을에서 태어난 칠보라는 총각 종은 이 부잣집에서 종살이를 하고 살았는데 잘 생긴 호남아였다.

그 집에는 과년한 딸이 하나 있었는데 칠보와 그 처녀는 남몰래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들은 신분이 달라 혼인할 생각은 엄두도 못 내면서 사랑은 깊어만 갔다. 뒤늦게 이들 사랑을 눈치챈 처녀의 오빠는 관계를 끊으라고 준엄한 경고를 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정은 깊어지기만 하였다.

할 수 없이 처녀의 오빠는 칠보와 누이동생을 산 위에 있는 굴로 데려가서 한 굴에 한 사람씩 밀어넣고는 관계를 끊을 것을 종용하였으나 그들은 정을 끊기보다는 차라리 죽겠다고 결심하고, 서로 애타게 이름을 부르다가 죽었다. 그 뒤 그들은 각기 청룡 · 황룡이 되어 승천하게 되었는데 한 개의 여의주로 정답게 승천하였다고 전한다.

이 민속놀이는 영월읍에서 지명전설을 토대로 강원도민속예술경연대회에 선을 보인 작품으로, 반상(班常)이라는 신분 때문에 이루지 못한 사랑의 한을 청룡 · 황룡이라는 이상적 동물의 재생을 통해 달래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참고문헌

『한국민속문화론』(임동권, 집문당, 1983)
『영월의 향기』(영월군, 1982)
집필자
김선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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