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권. 활자본. 쌍매당은 그의 호이고, 협장은 자기 집의 책장에 보관할 문집이라는 뜻으로 겸손하게 이름을 붙인 것이다. 아들 소축(少畜)이 편집, 간행하였는데, 원본은 극히 희귀하며 그 중 일부가 현재 전해지고 있다.
권22∼25가 복사되어 연세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을 뿐이며, 그 원본의 소재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밖에 필사본으로 권1·2가 후손인 충청남도 보령의 이석찬가에 소장되어 있다. 이에 의해 전체의 목차를 알 수 있다. 권1 서두에 저자의 연보가 상세하게 실려 있고 총목차가 있다.
권1∼14에 시 2,670수, 권15에 사(辭) 6편, 부(賦) 4편, 설(說) 16편, 권16에 서(序) 33편, 권17·18에 기(記) 36편, 명(銘) 24편, 권19에 표(表) 4편, 전(箋) 59편, 권20에 교서(敎書) 17편, 간소(諫疏) 9편, 권21에 장(狀) 45편, 차자(箚子) 8편, 권22에 잡저 42편, 권23에 원(原) 1편, 논(論) 2편, 전(傳) 2편, 계문(契文) 8편, 권24에 제문·애사 33편, 권25는 서간 10편, 발문 12편, 비문 4편, 소어(疏語) 40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권1·2에는 그가 1402년(태종 2) 명나라 사신으로 갔을 때에 지은 시가 실려 있다. 그리고 권22∼25에 수록된 글들을 통해 그의 사상을 알 수 있다. 즉, 잡저에 실린 『삼국사』의 서문과 그의 사론을 통해 사학 사상을 유추할 수 있으며, 계문을 통해 당시 그가 참여한 계의 성격과 조직·목적 등을 알 수 있다.
권24의 「제망자문(祭亡姉文)」은 『고려사』 열전과 연보 기록을 보완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그의 문집이 전하지 않는 이유는 그가 고려 말 왕실을 유지하려 한 학자이며 관료였으므로 문집의 내용 중에 이러한 사상이 반영된 부분이 상당히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그의 문집을 전부 구할 수 있다면 고려 말의 왜곡 서술된 관찬 사서의 내용을 바로잡을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 또한, 그의 시·사·부·전기·비문 등은 한문학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