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그룹 (Gro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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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양회 동해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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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양회주식회사를 주축으로 형성된 기업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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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쌍용양회주식회사를 주축으로 형성된 기업체군.
연원 및 변천

김성곤(金成坤)이 1939년 비누공장인 삼공유지합자회사를 설립한 데서 비롯되며, 1948년 금성방직주식회사를 설립함으로써 기반이 확립되었다. 금성방직은 6·25전쟁 당시 시설이 잿더미로 되었으나 전후 국내 최고의 방적공장으로 재건되었다.

그 뒤 1962년 5월 쌍용양회공업주식회사가 설립되어 국가기간산업확충의 견인차가 되었으며 현재와 같은 그룹으로 성장하는 기틀을 다지게 되었다.

1988년 7월 당시 쌍용그룹의 사업분야는 시멘트·정유·건설·해운·제지·자동차·기계·전자·컴퓨터·보험·증권 등에 걸쳤으며, 총 21개 회사로 구성되어 있었다.

세계 여러 나라에 진출한 현지법인이 13개, 해외지점이 15개, 전체종업원은 1만 7000여 명이었다. 쌍용은 특히 해외건설분야에서 괄목할 실적을 쌓았는데, 1986년 4월에 건설된 싱가포르의 래플스시티 건물같은 것은 ‘도시 속의 도시’로 쌍용의 성가를 드높였다.

쌍용은 제조업·서비스업 뿐 아니라 일찍이 통신사와 신문사를 경영하였고, 1959년부터는 국민대학교를 운영하였다. 창업자 김성곤의 타계로 1975년 이후 장남 김석원(金錫元)이 그룹을 이끌어왔다.

현황

1997년 국제통화기금 금융위기를 맞아 쌍용그룹은 강력한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었다. 그동안 그룹차원에서 강력하게 추진해 왔던 자동차사업이 부채만 2조원 이상을 떠안았기 때문이다. 이 부채의 여파로 인해 쌍용그룹은 1997년 쌍용제지㈜를 미국 P&G에 매각하였고, 1998년 쌍용자동차㈜를 대우그룹에, 쌍용투자증권㈜ 을 미국의 H&Q AP에 각기 매각하였다. 이후에도 계열사를 지속적으로 매각하여 쌍용양회공업㈜ 등 몇몇 계열사만 명맥을 유지함으로써 쌍용그룹은 사실상 해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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