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자 김한수(金翰壽)는 광복 직후 부산에서 직물류와 복지류 도매상을 경영하여 축적한 경험과 자본을 가지고, 1953년 식품과 한천(寒天)을 수출하고 복지를 수입하는 대경산업주식회사를 설립하였으며, 1956년에는 부산에 경남모직주식회사를 설립하여 복지를 직접 생산하기에 이르렀다.
1960년대 들어 세계섬유시장은 화학섬유와 합성섬유의 붐에 들떠 있었고, 원모를 대용하는 아크릴은 나일론 · 폴리에스터와 함께 ‘마법의 섬유’로 소비자의 인기를 끌고 있었다.
이 때 김한수는 시류에 대응하기 위하여 아크릴섬유에 눈을 돌렸다. 그는 먼저 중앙합섬을 세워 모방업과 합섬업을 복합적으로 운영해오다가 1964년 한일합성섬유공업주식회사를 설립하였다.
1967년 1월 마산에 하루 7.5t의 아크릴을 생산하는 공장을 준공하였다. 아크릴제품은 생산되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고 수요가 공급을 앞질러서 시설확장이 필요하였으며, 세계시장을 겨냥하기 위해서는 시설의 국제규모화가 불가피하였다.
1969년 1월에 김해에 방적공장이 준공됨을 기점으로 하여 1973년에 마산공장, 1974년에 수원공장, 1975년에 대구공장을 각각 증설하여 섬유종합메이커로서의 기반을 구축하였다.
1973년 10월에는 아크릴섬유의 기초원료를 자급하기 위하여 정부투자업체였던 동서석유화학주식회사를 인수하고, 같은 해 1월 기업을 공개하였다.
1974년 4월에는 마산에 국내기업으로서는 최초로 종업원을 위한 한일여자실업고등학교를 설립하여 근로소녀들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주고 산학협동의 방향을 제시하였는데, 그 뒤 1979년 3월 김해, 1980년 3월 대구와 수원에도 부설학교를 설립하였다.
1987년 4월 재단법인 한효문화재단을 설립하였고, 1989년 7월에는 인력개발원을 개원하였다. 1990년 10월 P · THanil Adetex인니 합작법인을 설립(51%출자)하였고, 11월 한일레저개발(주)을 인수하였다.
1991년 6월 한효과학 기술원을 설립하였고, 1992년 2월 신라투자금융(주) 인수후 상호를 한일투자금융(주)로 변경하였다. 1992년 2월 의령공장(합성방적)을 준공하였고, 1993년 2월 (주)한일합섬으로 상호를 변경하였다.
1993년 10월 중국 하북성 합작법인을 설립하였고, 11월 중국대서 합작법인을 설립하였다. 1995년 12월 한일레저개발(주)를 흡수합병하였고, 1996년 2월 수원공장(지점)을 폐쇄하였으며, 7월 독일 현지 법인(HANDELS GMBH)을 설치하였다. 그러나 1998년 IMF 경제위기 여파로 인해 정부로부터 퇴출기업으로 선정되었다.
1996년 말 당시 주요 사업은 폴리아크릴화이바 제조, 가공 및 판매, 양모톱 제조, 가공 및 판매업, 섬유, 의복, 침장류 및 가죽제품제조 및 판매업, 방적, 편직, 염색 가공업, 토목, 건축, 포장공사, 설계 및 청부업, 주택건설업, 부동산의 임대, 판매, 관리에 관한 사업, 해외건설 및 해외공사수주업, 의약품, 위생용품 및 기타 화학제품 제조판매업 등이었다.
주요 제품과 구성비율은 분양수입 20.3%, 아크릴화이바 17.8%, 매입상품 17.0%, 봉제 16.4%, 아크릴사 10.2%, 공사수입 5.1% 등이었다.
관계회사로는 국제상사, 동서석유화학, 진해화학, 남주개발, 신남개발, 한일리조트, 한일레저개발, 연합물산 등이 있었다. 1996년 당시 총자산은 1조 4,254억 원, 자본금 976억 원, 연간매출액 5,850억 원이었다. 종업원은 관리사무직 1,230명, 생산직 996명 등을 합쳐 2,226명이었다.
국제통화기금(IMF) 금융위기로 1998년 부도를 맞았으며, 2000년 2월 회사정리계획안이 인가되었다. 2007년 동양그룹에 인수되었고, 이후 2016년 유진그룹에 인수되었다. 2009년 6월 경상남도 의령군에 스판본드 공장을 신설했는데, 연간 3천 톤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 본사는 서울특별시 마포구 마포대로 155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