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타구존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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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타구존도
아미타구존도
회화
작품
고려시대의 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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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시대의 불화.
내용

1320년(충숙왕 7년) 작. 비단 바탕에 채색. 세로 177.2㎝, 가로 91㎝. 일본 나라현(奈良縣) 야마토고리야마시(大和郡山市) 마쓰오사(松尾寺) 소장. 여러 면에서 노영(魯英)이 그린 아미타구존도(1307년)와 비교되는 작품이다.

상·하단의 2단 구도로, 상단의 아미타불과 이를 둘러싼 커다란 둥근 원과 둥근 머리 광배가 표현되었다. 커다란 둥근 원을 따라 미륵보살(彌勒菩薩)과 지장보살(地藏菩薩), 금강장보살(金剛藏菩薩)과 제장애보살(除障碍菩薩)의 작은 머리 광배가 배치되었다.

그리고 그 아래로 관음보살(觀音菩薩)·세지보살(勢至菩薩)와 문수보살(文殊菩薩)·보현보살(普賢菩薩)의 머리 광배가 배열되었다.

즉, 원과 원이 이어지고 합쳐지며, 겹치고 조화되어 전 화면을 아름답게 구성하고 있다. 특히 8대보살을 좌우로 대칭이 되도록 나누고 이들을 다시 사다리꼴로 좌우로 퍼지게 하였다. 이로써 아미타불에게로 시선이 집중되게 하는 신묘한 구도를 보여 주고 있다.

아미타불은 이마가 넓고 둥근 얼굴, 비교적 작은 이목구비와 근엄한 표정 등으로 1306년 작 아미타불(일본 네즈미술관 소장) 얼굴 계통을 계승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체구는 노영필의 아미타구존도보다 힘과 위엄은 부족하다. 하지만 단정하고 부드러운 모습의 좀더 온화한 분위기를 보여 주고 있다.

이 점은 구불구불하면서도 리드미컬하게 흐르는 듯한 옷주름선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통견(通肩)의 대의(大衣), 왼쪽 어깨에 걸쳐져 내리는 옷자락과 연꽃대좌 아래로 구불구불하게 굴곡져서 내리는 옷자락들의 특징은 바로 노영필의 아미타구존도의 본존과 흡사하다.

앞줄 중앙의 좌우에는 두 손을 모아 정병을 쥐고, 화불을 그린 보관을 쓰고 흰 천의를 입은 어깨로 머리카락이 치렁치렁 내려오는 관음보살과 손에 경함(經函)을 들고 정병이 그려진 보관을 쓰고 흰 천의를 입은, 역시 머리카락이 치렁치렁한 대세지보살은 모두 약간 몸을 오른쪽으로 틀었다. 하지만 얼굴은 정면을 향하고 있으며, 본존불의 얼굴 모습과 흡사하다.

좌우보살은 문수와 보현으로 당당한 자세, 풍만한 얼굴, 근엄한 인상 등으로 보다 남성적이며, 천의 자락들은 무겁고 듬직한 모습이다. 문수보살은 경책(經冊), 보현보살은 여의(如意 : 설법할 때 중이 가지는 도구)를 든 것이 특징적이다. 뒷줄 중앙은 5화불을 장식한 보관을 쓴 미륵과, 꽃무늬가 수놓인 두건과 천의를 입고 있는 고상한 분위기의 지장보살이, 좌우로는 금강장보살과 제장애보살이 배치되어 있다.

중앙의 정면을 향한 보살들은 역시 본존과 얼굴 모습이 비슷하고 좌우 측면의 보살들은 보다 남성적인 얼굴들이다. 색채는 붉은색과 흰색, 여기에 금색이 섞여 화사한 얼굴들과 함께 고귀하고 우아한 색감을 만들어 내고 있다.

화면의 왼쪽 모서리에는 “延祐七年五月日安養寺住持大師□(연우7년5월일안양사주지대사○)”라는 금니의 화기가 있어 1320년 안양사에서 조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안양사는 금강산유점사(楡岾寺)의 말사인 안양사일 수도 있고, 경기도 안양의 안양사일 가능성도 있다.

참고문헌

『한국의 미 7-고려불화-』(이동주 감수, 중앙일보사, 1981)
『高麗佛畵』(菊竹淳一·吉田宏志, 東京 朝日新聞社,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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