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타여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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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
작품
고려시대의 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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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시대의 불화.
개설

1306년 작. 세로 162.5㎝, 가로 91.7㎝. 비단 바탕에 채색. 일본 도쿄 네즈미술관[根津美術館] 소장.

내용

1306년(충렬왕 32년)이라는 절대 연대를 가지고 있어 당시의 불화 양식을 밝힐 수 있는 기준 작품이 되고 있다.

머리 모양은 낮은 삼산형(三山形)으로서 한가운데 금선과 붉은색으로 강하게 계주(髻珠)를 표현하였다. 얼굴은 사각형으로 넓적한 편이며, ︷모양의 이마는 보다 개성 있는 모습을 만들고 있다. 특히 이마의 양쪽 끝이 치켜 올라간 모양은 14세기 초까지의 불상 얼굴에 주로 쓰여지던 수법이어서 시대적 특징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코와 눈썹은 서로 이어진 선으로 그렸다. 눈과 입은 얼굴에 비하여 작아 근엄한 얼굴 모습을 보여 준다. 그러나 장중한 기풍은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어깨는 약간 움츠렸지만 넓은 가슴, 당당한 자세 등에서 위엄 있는 불(佛)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오른손은 어깨까지 들어 중지를 구부렸는데, 손바닥에는 금니로 법륜(法輪)을 표시하였다.

왼손은 무명지를 구부리고 배 부근에 대고 있다. 결가부좌(結跏趺坐)의 형태는 왼쪽 다리 위에 오른쪽 다리를 올려놓은 길상좌(吉祥坐)의 단엄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대좌는 8각대좌로, 하대(下臺)의 각 면은 법륜 모양의 꽃무늬를 새겼다. 중대(中臺)는 연꽃송이와 이를 둘러싼 당초 모양의 도안화된 구름무늬를 새겼다.

그리고 상대(上臺)는 2단으로 상단에는 보상당초, 하단은 도안화된 법륜 모양의 꽃무늬, 모서리에는 고리 장식을 하여 꽃무늬가 새겨진 띠를 장식하였다. 모든 주변에는 연주화무늬[連珠花文]를 아로 새겼다. 이 8각대좌 위에는 큼직한 연꽃을 묘사하였는데, 이 위에 불상이 앉아 있다. 이런 대좌는 당시 불상 대좌의 통례였던 것 같다.

광배는 갈색으로 전신광을 그린 뒤 두광의 꼭지를 전신광보다 약간 크게 그려 테두리를 금선으로 처리하는 수법을 보여 주고 있다. 색채는 붉은색과 녹색·금색이 주조를 이룬다. 홍색과 녹색은 밝은 색은 아니지만 흰색과 금색을 많이 사용하여 호화찬란하면서도 은은한 분위기를 보여 주고 있다.

필선은 형태와 같이 단아하고 명쾌한 편이다. 이런 점은 대좌의 연꽃 끝이나 옷자락 끝 같은 곳의 마무리에서 그렇게 날카롭지도 않고 또한 원만하지도 않은 단엄한 처리로 잘 나타나고 있다. 이 불화에서 특히 주목할 점은 장식적인 면으로, 머리의 계주, 가슴의 만(卍)자, 손바닥과 발바닥의 법륜 등은 모두 금색으로 처리하여 고귀한 인상을 준다.

또 통견의 법의에는 표면을 모두 금니의 꽃무늬로 장식하였고, 가장자리 역시 금니로 촘촘하게 삼각형 목단화문(牧丹花文)을 그려 넣었다. 특히 왼쪽 가슴 아래 승각기(僧脚岐: 下裙)를 묶던 치레로 생각되는 것이 반쯤 드러나 보인다. 이런 모양은 14세기의 조각(文殊寺·長谷寺 등)과 불화에 흔히 나타나던 특징임이 주목된다.

대좌 좌우에 금니로 적혀 있는 화기에 의하면, 1306년(大德 10年, 충렬왕 32년) 권복수(權福壽)라는 사람이 충렬왕·충선왕·충선왕비(寶塔寶憐公主) 등 세 전하가 속히 본국으로 돌아오길 기원해서 새로 아미타탱화 1점을 조성하였다고 한다.

참고문헌

『한국의 미』7 고려불화(이동주 감수, 중앙일보사, 1981)
『高麗佛畵』(菊竹淳一·吉田宏志, 東京 朝日新聞社,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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