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고려시대의 불화.
개설
내용
그러나 형태면에서 머리 모양은 비슷하지만 얼굴이 1306년의 작품처럼 넓적하지 않고 동그란 편이다. 그리고 이마는 ︷모양이 아니라 반듯해서 양쪽으로 치켜 올라가지 않았다. 이목구비는 잘 조화되어 단아한 인상을 풍겨 준다.
이런 얼굴은 1323년 제작된 치온인[知恩院] 소장 「관경변상도(觀經變相圖)」의 아미타삼존불의 본존 얼굴이나 1350년 작 「미륵하생경변상도(彌勒下生經變相圖)」의 미륵불 얼굴과 친연성이 강하다. 그러므로 대개 14세기 2/4분기 즈음의 불화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어깨나 가슴·다리 등에서 넓고 팽창된 듯한 형태보다는 단아하고 정연한 모습을 보여 주는 데서도 1323년(충숙왕 10) 설충(薛冲)이 그린 「미륵하생경변상도」 내지 치온인 소장 「미륵하생경변상도」 등의 형태와 유사한 점을 알 수 있다. 또한 색채는 1306년 작인 아미타여래도와는 달리 명도가 높은 치온인 「미륵하생경변상도」나 사이후쿠지[西福寺]의 「관경변상도」와 비슷한 것으로 밝고 선명하여 이 불상의 단아한 인상과 잘 어울린다.
그러나 전반적인 형태, 즉 가슴의 卍자, 손바닥과 발바닥의 법륜(法輪), 통견(通肩)의 옷을 입는 방식, 옷의 화려한 꽃무늬 배치, 승각기 장식의 표현, 연꽃의 형태, 대좌의 복잡한 형태 등은 1306년 작품과 거의 흡사한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주목되는 점은 손 모양과 좌세(坐勢)로서, 무릎까지 내려 엄지와 중지를 맞댄 모습은 「미륵하생경변상도」의 수인과 유사하다. 그리고 결가부좌의 모습도 다른 아미타불과는 달라 불화의 명칭에 대하여 좀더 고려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참고문헌
- 『한국의 미』7 고려불화(이동주 감수, 중앙일보사, 1981)
- 『高麗佛畵』(菊竹淳一·吉田宏志, 東京 朝日新聞社, 1981)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