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타여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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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타여래도
아미타여래도
회화
작품
고려시대의 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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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시대의 불화.
개설

비단 바탕에 채색. 세로 164㎝, 가로 89.5㎝. 일본 교토[京都] 교쿠린인[玉林院] 소장.

내용

외형적인 형식면에서는 1306년(충렬왕 32년) 작 아미타여래도(일본 네즈미술관 소장)와 거의 유사하여, 비슷한 시기에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형태면에서 머리 모양은 비슷하지만 얼굴이 1306년의 작품처럼 넓적하지 않고 동그란 편이다. 그리고 이마는 ︷모양이 아니라 반듯해서 양쪽으로 치켜 올라가지 않았다. 이목구비는 잘 조화되어 단아한 인상을 풍겨 준다.

이런 얼굴은 1323년 제작된 치온인[知恩院] 소장 「관경변상도(觀經變相圖)」의 아미타삼존불의 본존 얼굴이나 1350년 작 「미륵하생경변상도(彌勒下生經變相圖)」의 미륵불 얼굴과 친연성이 강하다. 그러므로 대개 14세기 2/4분기 즈음의 불화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어깨나 가슴·다리 등에서 넓고 팽창된 듯한 형태보다는 단아하고 정연한 모습을 보여 주는 데서도 1323년(충숙왕 10) 설충(薛冲)이 그린 「미륵하생경변상도」 내지 치온인 소장 「미륵하생경변상도」 등의 형태와 유사한 점을 알 수 있다. 또한 색채는 1306년 작인 아미타여래도와는 달리 명도가 높은 치온인 「미륵하생경변상도」나 사이후쿠지[西福寺]의 「관경변상도」와 비슷한 것으로 밝고 선명하여 이 불상의 단아한 인상과 잘 어울린다.

그러나 전반적인 형태, 즉 가슴의 卍자, 손바닥과 발바닥의 법륜(法輪), 통견(通肩)의 옷을 입는 방식, 옷의 화려한 꽃무늬 배치, 승각기 장식의 표현, 연꽃의 형태, 대좌의 복잡한 형태 등은 1306년 작품과 거의 흡사한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주목되는 점은 손 모양과 좌세(坐勢)로서, 무릎까지 내려 엄지와 중지를 맞댄 모습은 「미륵하생경변상도」의 수인과 유사하다. 그리고 결가부좌의 모습도 다른 아미타불과는 달라 불화의 명칭에 대하여 좀더 고려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참고문헌

『한국의 미』7 고려불화(이동주 감수, 중앙일보사, 1981)
『高麗佛畵』(菊竹淳一·吉田宏志, 東京 朝日新聞社,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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