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전체 높이 198㎝, 불상 높이 157㎝. 원래 죽산면 죽산리 봉업사지에 있었던 것을 죽산중학교 교정으로 옮겼고, 다시 칠장사(七長寺)로 옮겨 지금에 이른다.
소발(素髮)의 머리에 육계가 솟아 있는데, 높직하여 모자처럼 보인다. 얼굴은 둥글고 팽창감을 느끼게 한다. 작은 눈, 독특한 코, 두툼한 입술 등의 표현은 인도 마투라 양식(Mathura 양식: 마투라는 기원전부터 인도 미술의 중심지로, 불상 양식은 소박하고 대범한 조형으로 붉은 재질을 살려서 충분한 볼륨을 나타내는 것이 특징)의 얼굴 모습이다.
신체는 늘씬하면서 우아한 형태이며, 둥근 어깨, 가는 허리, 볼록한 배, 불의(佛衣) 위로 드러나는 무릎과 두 다리의 표현 등 비교적 양감 있는 세련된 모습이다. 불의는 얇은 통견의를 착용하고 있어서 인체를 사실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특징은 인도 굽타 양식(Gupta 양식: 간다라 양식을 인도화한 불상 조각 수법이 특징)을 계승한 것이다. 옷주름 역시 유려한 Ω자형 주름이 양다리를 걸쳐 흘러내리고 가슴의 옷깃이 반전하는 등 우드야나식[Udyāna 식 또는 우전왕상식(優塡王像式): 옷주름 양식의 하나]을 나타내고 있다. 가슴은 U자형으로 트여 있어서 굽타 변형식이라 하겠다. 오른손은 가슴까지 들어올려 손바닥을 붙였고[內掌], 왼손은 내려 옷자락을 잡고 있는데 이 또한 굽타식이다.
이와 같이 팽창된 얼굴, 유연하며 알맞은 양감을 나타낸 신체와 유려한 우드야나식 착의법 등은 8세기의 통일신라 전성기 양식을 반영하고 있다. 즉, 경주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 특히 북면보살입상과 상당한 친연성이 있어서 단순하게 살펴보면 신라 불상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얼굴의 팽창감은 신라의 세련된 탄력감이 아닌 팽만감이며, 신체 역시 우아한 양감의 신라식과는 다르다. 옷주름의 유려함도 해이해진 선묘여서 통일신라 전성기 양식과는 확연히 구별되고 있다.
이러한 점은 광배에서도 나타난다. 주형 거신광배의 외형은 8세기의 경주 감산사 석조미륵보살입상·석조아미타여래입상과 비슷하다. 하지만 두광(頭光) 안에 구름 위 세 화불만 단순하게 부조하였을 뿐이다. 두신광의 외연을 따라 좁은 공간에 불꽃무늬를 새긴 도식적인 표현이나 장대한 광배 형태 등도 감산사 불상 같은 신라 양식과는 구별되는 것이다. 즉 이 석불입상은 8세기 신라 전성기의 불상 양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지만, 고려 양식이 물씬 풍기는 새로운 경향을 보이는 고려 석불의 수작이다. 이 불상이 있었던 봉업사지는 당대의 명찰로, 불상대좌, 탑 등이 산재되어 있고 금속 공예품들도 대량 출토되고 있어, 이 불상과 함께 고려 조각사에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