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원왕은 삼국시대 고구려 제23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531~545년이다. 안장왕의 동생으로 왕이 후사 없이 죽자 왕위를 계승했다. 백제와 신라가 동맹을 맺어 고구려에 대응하던 시기지만 백제군의 우산성 침투를 격퇴한 것 외에는 소강 상태가 유지되었다. 중국 남조의 양나라, 북조의 북위와 양면외교를 적극적으로 펼쳐 외교적 안정을 유지했다. 국내 상황은 재난이 연이어져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었다. 게다가 왕의 후사를 둘러싸고 귀족세력들이 두 파로 나뉘어 싸우면서 사회가 어지러웠고, 두 세력이 무력으로 충돌하는 와중에 세상을 떠났다.
재위 531∼545. 일명 곡향강상왕(鵠香岡上王) · 향강상왕(香岡上王) 또는 안강상왕(安岡上王)이라 불리며 이름은 보연(寶延)이다. 안장왕의 동생으로 형의 극진한 사랑을 받았으며 왕이 후사 없이 죽자 왕위를 계승하였다. 신장이 7척 5촌이나 되고 도량이 넓었다 한다.
즉위와 함께 남조의 양(梁)나라로부터 안장왕의 지위 계승을 인정받았으며 532년(안원왕 2)에는 북위(北魏)로부터 ‘사지절 산기상시 영호동이교위 요동군개국공 고구려왕(使持節散騎常侍領護東夷校尉遼東郡開國公高句麗王)’에 봉하여졌다. 북위와 양나라가 대립하던 중국은 534년 북위가 동 · 서위로 분열되었는데, 안원왕은 동위와 양나라와의 양면외교를 적극 전개함으로써 안정을 유지하였다. 동위로부터는 534년에 ‘표기대장군(驃騎大將軍)’이라는 지위를 추가로 받았다. 한편 백제와 신라는 군사동맹을 맺고 향상된 국력을 바탕으로 고구려에 대응했다. 이들과의 대결은 540년 백제군의 우산성(牛山城) 침략을 격퇴시긴 일 외에는 대체로 소강상태였다.
그러나 국내적으로 535년에 홍수 · 지진 · 전염병이, 그리고 535 · 536 · 541년에는 각각 가뭄 · 황충 · 기근 · 태풍 등의 재난이 계속되어 어려운 상황이었다. 더욱이 왕의 후사를 둘러싸고 자기 소생을 왕으로 세우려고 하는 두 왕비간에 암투가 심했다. 게다가 그들을 후원하는 귀족세력들이 이른바 추군(麤群)과 세군(細群)으로 나뉘어 싸움으로써 고구려 사회 전반에 동요를 가져왔다. 왕은 545년 추군과 세군의 대립이 무력충돌로 비화하는 와중에 세상을 떠났다. 안원왕의 재위기간에 대해 중국의 『양서』에는 『삼국사기』와 달리 526∼548년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학계에서는 『삼국사기』의 기록을 따라 531∼545년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