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1폭. 세로 100.3㎝, 가로 23㎝.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선지(宣紙)에 반초서로 되어 있다.
이 유묵은 러일전쟁 당시 전의(典醫)로 종군하였다가 종전이 되자 만주 여순감옥에서 근무하던 일본인 오리다[折田督]가 1910년 3월 옥중에서 받아 간직해오던 것이다.
1945년 8월 15일 광복으로 그 가족들이 일본으로 귀국할 때 그 조카 오리다[折田幹二]에게 넘겨주었으며, 이것이 1989년 2월 단국대학교에 기증된 것이다.
중국 선지에 ‘欲保東洋先改政略時過失機追悔何及(욕보동양 선개정략 시과실기 추회하급: 동양을 보존하려면 먼저 정략을 바꾸어야 한다. 때가 지나고 기회를 놓치면 후회한 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라는 내용을 2줄에 세로로 쓰고, 그 왼쪽에 ‘庚戌三月旅順獄中大韓國人安重根書(경술 3월 여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서)’라는 묵서와 장인(掌印)이 찍혀 있다.
2줄 16자의 본문내용은 일본인의 침략정책에 개과(改過)를 촉구하는 계고(戒告)이며, 또한 일본 집정자들에게 경각심을 고취하는 뜻이 담겨 있다. 또, 낙관의 관지(款識) 밑에 찍은 좌수장(左手掌)은 단지혈맹(斷指血盟)을 상징하는 듯하다.
안중근의 유묵은 1972년 보물로 20점이 이미 일괄 지정된 바 있거니와, 1993년 보물로 지정된 유묵과 함께 이 유묵은 특히 일본 집정자를 경고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그 가치는 더욱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