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고려후기 지밀직사사, 첨의찬성사, 판정치도감사 등을 역임한 문신. 문인.
개설
생애와 활동사항
고려에 돌아와 성균악정(成均樂正)·우사간대부(右司諫大夫)를 거쳐, 충혜왕 때 왕명으로 강원도존무사(江原道存撫使)로 파견됐다. 1332년(충숙왕 복위 1)에 판전교지전법사(判典校知典法事)에서 파면됐다가 전법판서(典法判書)로 복직됐다. 그러나 내시의 미움을 받아 다시 파직됐다. 충혜왕이 복위하자 전법판서(典法判書)·감찰대부(監察大夫)에 등용됐고, 이어 교검교평리(校檢校評理)로서 상주목사(尙州牧使)를 지냈다.
1344년(충목왕 1)에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와 정당문학(政堂文學)을 거쳐 다음 해에 첨의찬성사(僉議贊成事)를 차례로 지냈다. 1347년(충목왕 3)에 판정치도감사(判整治都監事)가 돼 양전(量田: 세입을 위해 토지를 측량하는 일)에 참여했다.
경기체가 「관동별곡(關東別曲)」과 「죽계별곡(竹溪別曲)」을 지어 명성이 높았다. 강원도존무사로 있을 때에 나라에 충성하고 백성을 사랑하는 내용을 담아 『관동와주(關東瓦注)』라는 문집을 남겼다. 또 감춘추관사(監春秋館事)로 있을 때에는 민지(閔漬)가 지은 『편년강목(編年綱目)』을 이제현(李齊賢) 등과 수정·보완했다. 충렬(忠烈)·충선(忠善)·충숙(忠肅) 세 왕의 실록을 편찬하는 데에도 참여했다. 저서로는 『근재집(謹齋集)』이 전한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 『근재집(謹齋集)』
- 『가정집(稼亭集)』
- 『양촌집(陽村集)』
- 『동문선(東文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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