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독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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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
지명
신라 중고기의 지방통치구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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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신라 중고기의 지방통치구획.
내용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일대에 위치하였다. 압량주(押梁州)라고도 하였다. 삼한시대에는 압독국(押督國)이었다가 102년(파사이사금 23)신라에 복속되었으며 지마이사금 때 압량군이 되었다.

146년(일성이사금 13) 10월 반란을 일으켰으나 진압되면서 주민들이 남쪽지방으로 강제 이주당하였다. 압독주가 언제 처음 설치되었는가 확실히 알 수 없다. 다만 『삼국사기』 권5 선덕왕 11년조와 권41 김유신전(金庾信傳)에, “선덕왕 11년(642)에 김유신을 압량주 군주로 삼았다.”라고 하여, 압량주에 관한 기록이 처음으로 보인다.

이에 앞서 같은 해 8월 신라는 백제와의 대야성전투에서 대패함으로써 대야성을 상실하였을 뿐만 아니라 군사상 크게 후퇴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는데, 이 때 대백제방어상 군사적 요충지로 부각된 곳이 바로 압량주였다.

661년(문무왕 1) 5월 압독주가 대야지방으로 옮겨져 설치되었는데, 이는 전해에 백제를 정복한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 뒤 압독군으로서 양주에 소속되었으며, 경덕왕대에 장산군(獐山郡)으로 개명되었다.

압독주의 장관으로는 김유신·김인문(金仁問)·김종정 등이 보이며, 또한 원효(元曉)가 이곳의 불지촌(佛地村) 율곡(栗谷)에서 출생하였다. 신라 5악(岳)의 하나인 부악(父岳)이 여기에 위치하였으며, 백실(白實)이라는 음악도 있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삼국유사(三國遺事)』
「신라 중고(中古)의 지방통치조직에 대하여」(주보돈, 『한국사연구』 23, 1979)
「신라 중고기(中古期) 주제(州制)의 형성과 운영」(강봉룡, 『한국사론』 16, 서울대학교국사학과,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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