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책. 필사본. 서문은 없고, 2책의 끝부분에 1774년(영조 50) 안사수(安士受)가 쓴 발문이 있다. 편자와 필사 연도 등은 알 수 없다. 필체가 여러 종류이고 중복된 부분이 많다. 저자의 아호도 도암(道巖)·야연(野淵)·도암(道庵) 등 여러 가지로 표기되어 있다. 규장각 도서에 있다.
원(元)·형(亨)·이(利) 3책으로 나누어져 있다. 1책은 표지에 야연도암만록(野淵道巖漫錄)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시 500여 수, 2책은 수주적행일록(愁州謫行日錄), 설(說) 1편, 기(記) 2편, 제문 4편, 행록 1편, 장초(狀草) 5편, 음기(陰記) 1편, 서(書) 2편, 서(序) 2편, 3책은 시 80여 수, 소(疏), 계민가(誡民歌) 등이 수록되어 있다.
「대설(對雪)」·「벽제도중(碧蹄途中)」·「조굴원(弔屈原)」·「적거유감(謫居有感)」 등의 시는 당나라의 시인 두보(杜甫)의 운(韻)을 써서 지은 것으로, 주로 함경도 종성에서 유배생활을 하면서 지은 것들이다. 이밖에 회갑을 맞아 친지에게 받은 축시(祝詩), 이세즙(李世楫)·어석일(魚錫一)·이동철(李東喆) 등과 창수(唱酬)한 시, 화답시 등이 있다.
「수주적행일록」은 양지현령(陽智縣令)으로 재임하던 중 1757년에 전정(田政)과 관련하여 어사 윤동승(尹東昇)의 탄핵을 받아 종성에 유배된 뒤의 심정과 그곳에서의 생활을 적은 일기이다. 장초는 모두 유배지에서 지방관의 부탁으로 대신 지은 글이다. 국경방비·군사훈련 등에 관한 내용이다.
서(書)는 유배지에서 자신의 신원을 위해 재상에게 보낸 것이다. 서(序)는 양지현령으로 재임하면서 고마청(雇馬廳)·기수청(旗手廳) 등을 세우고 그 배경을 밝힌 글이다.
상소는 양주의 유생을 대신하여 지은 글로, 능(陵)이 많아 결역(結役)·요역(徭役) 등이 다른 고을의 배나 되는 폐단을 지적하였다. 「계민가」는 양주목사 김종수(金鍾秀)가 지은 90구절로 된 국문 가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