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대한제국기 때, 중추원의관, 찬의, 주임관 등을 역임하다가 국권 피탈 이후에 벼슬을 그만두고 후학 양성에 전념한 문신·학자.
개설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문약(文若), 호는 죽호(竹湖). 아버지는 양경기(楊慶基)이며,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 권택중(權宅中)의 딸이다. 조극승(曺克承)의 문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905년 유천(儒薦)으로 장사랑(將仕郞)이 되고, 이어 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 찬의(讚議)를 거쳐 주임관(奏任官) 3품에 이르고, 1910년 일본에게 국권(國權)을 빼앗기자 벼슬을 그만두고 물러나 후진 양성에 전념하였다. 이론보다는 덕성(德性)을 함양(涵養)하고 도덕을 실천하는 데 힘쓴 학자이다. 저서로는 『죽호유집(竹湖遺集)』 2책이 있다.
참고문헌
- 『죽호유집(竹湖遺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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