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수(金燧)라고도 하였다. 볼록거울의 유물은 서기전 10세기경의 유적에서, 그리고 오목거울의 유물은 서기전 2세기경의 유적에서 각각 발견되었는데, 이것들은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런 거울의 원리가 중국이나 그 밖의 문화의 영향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청동장식품을 세공하던 공장(工匠)이 표면이 흰 금속의 표면을 닦다가 우연히 발견했을 가능성도 생각할 수 있다.
금수, 즉 금오목거울 또는 금화경(金火鏡)은 5, 6세기경의 신라시대 고분에서 발견된 요대(腰帶)에서 그 상징적인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오목거울은 고려시대에도 많이 만들어졌다. 그러한 오목거울은 여성들이 화장하는 데 쓰인 것이 아니라 특수한 용도, 즉 그 어떤 신비적인 목적 또는 불을 일으키는 데 쓰였을 것이라 한다.
이에 대하여 『동의보감(東醫寶鑑)』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양수가 해를 향하면 타서 불이 인다. 허신(許愼)이 이르기를, 양수는 금이니 금배(金盃)를 뜨겁도록 마찰하여 일중(日中) 때에 해를 향하여 쑥으로써 승접(承接)하면 쑥이 타서 불을 얻는다고 하였다. 해라는 것은 태양의 진화(眞火)인데, 그것은 수정주(水精珠)나 또는 오목하게 파인 구리거울[銅鏡]로 해를 향하여 쐬게 하고 쑥으로써 승접하면 그 빛이 모이는 곳에 불이 일어나는 것으로 알 수 있다.”
이렇게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찍부터 구면경이나 렌즈에 관한 중요한 광학적 현상을 알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