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수척(水尺)·화척(禾尺)·무자리라고도 한다. 고려 태조가 후백제를 정벌할 때 제어하기 어려웠던 유종(遺種)의 후예라고도 하지만 이에 관한 정확한 사료는 없는 편이며, 일반적으로 여진의 포로 또는 귀화인의 후예들이라고 알려져 있다.
변경지대에 주로 많이 살았고 수초(水草)를 따라 떠돌아다니면서 사냥과 유기(柳器 : 고리)를 만들어 파는 것으로 업을 삼았다.
최충헌(崔忠獻)의 집권 때에는 흥화도(興化道)·운중도(雲中道) 등의 양수척에 대한 공물의 과다 징수가 있자 크게 원망하였으며, 거란 유종인 금산왕자(金山王子)·금시왕자(金始王子) 무리가 침입하자 이들의 길잡이 노릇을 하기도 하였다.
또, 1382년(우왕 8)에는 왜구로 가장하여 영해군 동남해안을 침범하여 공해(公廨)와 민가를 불사르는 등 노략질을 하기도 하였다. 이들에 대한 호칭은 1423년(세종 5) 병조의 제의에 따라 백정(白丁)으로 바뀌었으나 그 신분은 여전히 천인으로 존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