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수척

  • 역사
  • 제도
  • 남북국
후삼국으로부터 고려에 걸쳐 떠돌아다니면서 천업(賤業)에 종사하던 무리.
이칭
  • 이칭무자리, 수척(水尺), 화척(禾尺)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나각순 (서울시사편찬위원회,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후삼국으로부터 고려에 걸쳐 떠돌아다니면서 천업(賤業)에 종사하던 무리.

내용

일명 수척(水尺)·화척(禾尺)·무자리라고도 한다. 고려 태조가 후백제를 정벌할 때 제어하기 어려웠던 유종(遺種)의 후예라고도 하지만 이에 관한 정확한 사료는 없는 편이며, 일반적으로 여진의 포로 또는 귀화인의 후예들이라고 알려져 있다.

변경지대에 주로 많이 살았고 수초(水草)를 따라 떠돌아다니면서 사냥과 유기(柳器 : 고리)를 만들어 파는 것으로 업을 삼았다.

최충헌(崔忠獻)의 집권 때에는 흥화도(興化道)·운중도(雲中道) 등의 양수척에 대한 공물의 과다 징수가 있자 크게 원망하였으며, 거란 유종인 금산왕자(金山王子)·금시왕자(金始王子) 무리가 침입하자 이들의 길잡이 노릇을 하기도 하였다.

또, 1382년(우왕 8)에는 왜구로 가장하여 영해군 동남해안을 침범하여 공해(公廨)와 민가를 불사르는 등 노략질을 하기도 하였다. 이들에 대한 호칭은 1423년(세종 5) 병조의 제의에 따라 백정(白丁)으로 바뀌었으나 그 신분은 여전히 천인으로 존재하였다.

참고문헌

  • - 『고려사(高麗史)』

  • - 「선초백정고(鮮初白丁考)」(강만길, 『사학연구(史學硏究)』18, 1964)

  • - 「白丁·水尺·禾尺·楊水尺」(鮎貝房之進, 『雜攷』5, 1937)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