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도봉산 남쪽의 작은 봉우리인 시루봉 기슭에 있다.
나란히 자리잡은 쌍분의 묘앞에는 ‘수록대부연창위시양효공안맹담지묘(綏祿大夫延昌尉諡良孝公安孟聃之墓)’와 ‘정의공주지묘(貞懿公主之墓)’라고 각각 새긴 묘갈과 상석이 있으며, 장명등과 문인석 4구가 서 있다.
이 지역은 죽산 안씨(竹山安氏) 집안의 묘역으로서 많은 분묘와 석비들이 산재해 있어 조선시대 가족묘제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원래 이 묘소터는 고려의 상장군 강택(姜澤) 부부의 묘지였다고 한다. 1462년(세조 8) 양효공이 세상을 떠나자 풍수가를 전국에 보내 묘자리를 찾았는데, 지금의 자리인 양주 해동촌 자좌원(楊州海東村子坐原)을 명당자리로 지목하였다.
이에 공주는 임영대군(臨瀛大君)을 재촉해 그 자리를 잡게 해달라고 세조에게 아뢴 후 허락을 받아 강택의 묘를 옮기고 장례를 지냈다고 한다.
신도비의 형태는 거대한 화강석 귀부 위에 대리석으로 된 비신과 이수가 한 돌로 된 통비이다. 이수는 여의주를 놓고 쌍룡이 다투는 모습을 조각하였다. 지대석 위에 놓인 귀부는 경복궁 안에 있던 것을 가져온 것으로, 거북 조각은 강인하면서 매우 정교하고 뛰어나다.
신도비의 총 높이는 382cm, 비신의 높이는 187cm, 폭은 104cm, 두께 26cm로 비문의 끝에 ‘成化二年丙戌立(성화2년병술립)’의 기록으로 보아 1466년(세조 12)에 건립되었다.
비문은 정인지(鄭麟趾)가 짓고, 전액과 글씨는 안맹담의 넷째 아들 빈세(貧世)가 썼다. 현재 비문은 마모가 심해 판독이 어려우나 전문이 전해지고 있다.
안맹담은 함길도도관찰출척사 안망지(安望之)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본관은 죽산(竹山)이다. 1428년(세종 10) 부마가 되어 죽성위(竹城尉)에 봉해졌다가 이어 연창군(延昌君) · 연창위(延昌尉)로 개봉되었다. 1455년(세조 1) 원종공신 1등에 책록되어 수록대부에 올랐다.
초서를 잘 써서 서예가로 이름이 높았고, 활도 잘 쏘고 음률과 약물에도 밝았다 한다. 공주는 1477년(성종 8)에 세상을 떠났으며, 이 해 공주의 원찰로 삼각산 동쪽에 도성암(道成庵, 현 도선사로 추정됨)이 창건되었다. 묘역의 방학로 길 건너 맞은 편에는 연산군 묘역이 자리잡고 있다. 1982년 11월 13일에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