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역은 원래 고구려의 땅이었고 뒤에 발해의 용원부(龍原府)이었으며 여진·원나라의 영토가 되었다가 고려의 공민왕 때 수복된 곳이다.
어랑단 부근은 단층해안으로 어대진(漁大津) 외에는 항구가 발달할 만한 곳이 없다. 경성만의 남쪽이며 기반암은 화강암이다. 곶의 북서쪽과 남쪽은 해식작용에 의하여 해발 80m 정도의 험한 벼랑이다. 단의 서쪽에 작은 어대진만이 있으며 그 기슭에는 모래로 덮여 있다. 이곳의 어대진항을 통하여 청진, 화대 등지와 화물 수송이 이루어진다.
어랑단 부근에는 팔경대(八景臺)·수중대(水中臺)와 같은 해안절벽이 발달하고 있으며, 무계호(武溪湖)·장연호(長淵湖) 등과 같은 석호가 발달되어 해안의 경치가 아름답다.
이 지역은 해안 지방에 있고 경성과 명천을 잇는 도로에서 벗어나 있어 조선시대에는 군사적으로 별다른 시설이 없었다. 부근 바다는 북한해류의 회유지역으로 명태, 임연수어, 멸치, 가자미, 문어, 털격판담치, 성게, 미역 등 수산자원이 풍부하다. 어랑단이라는 지명은 어장(漁場)이라는 뜻에서 나왔다.
이 곳은 숙종 때 명태가 잡힌 뒤 명태어장으로 유명해졌다. 조선시대에는 북창(北倉)이 있어 해안지방의 수산물을 모아 남쪽의 명천지방으로 보냈다. 광복 전 이 곳에 등대가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