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룡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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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
제도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관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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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관청.
내용

처음에는 내성(內省)에 소속되어 국왕의 근시(近侍)조직을 통할하는 업무를 담당한 관청이 있었던 듯한데, 삼국통일 후 왕국이 점차 전제화되면서 그 정치적 비중이 커졌다. 어룡성은 752년(경덕왕 11)에 동궁(東宮)관제가 제정될 때 정식으로 설치되었다.

801년(애장왕 2)에 장관직으로 내성의 장관직과 같은 사신(私臣)이 설치되면서 내성 관하에서 분리, 독립한 것으로 추측된다. 이 때 내성 관하의 여러 관청이 어룡성 예하로 소속이 변경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관원조직을 보면 국왕직속의 경우 장관직인 사신 1인, 차관직인 어백랑(御伯郎) 2인, 그 밖에 치성(稚省) 14인을 두었고, 동궁 직속의 경우 대사(大舍) 2인, 치성 6인을 각각 두었다. 한편 어백랑은 750년에 봉어(奉御), 780년(선덕왕 1)에 경(卿)으로 고쳤다가 또다시 얼마 뒤에 감(監)으로 고쳤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정치제도사』(이인철, 일지사, 1993)
「新羅內廷官制考 上」(三池賢一, 『朝鮮學報』61,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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