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지그룹 (LGgro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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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지(LG)화학과 엘지전자를 주축으로 형성된 기업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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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엘지(LG)화학과 엘지전자를 주축으로 형성된 기업체군.
연원 및 변천

그룹의 기틀은 1947년 락희화학 설립에서 비롯되지만, 이보다 앞선 1931년 7월 구인회(具仁會)·구철회(具喆會) 형제가 경상남도 진주에서 자본금 3,800원으로 구인상회를 세운 것이 효시이다. 따라서 그룹의 성장사는 1931년부터 현재까지 7개 시기로 구분하여 기록되고 있다.

1931년부터 1946년까지는 구인상회의 상업활동이 전개된 시기, 1947년부터 1950년까지는 락희화학에서 크림을 생산하던 시기, 1951년부터 1960년까지는 락희산업(과거의 럭키금성상사주식회사)설립으로 무역업을 시작하고 주식회사 금성사 설립으로 전자공업을 시작한 시기이다.

특히 이 시기에 국내 최초로 치약을 생산하기 시작하였다. 1961년부터 1966년까지는 화학 및 전자산업의 확립기인데, 전선·케이블·전화교환기·텔레비전세트·라디오 등이 이 시기에 생산되었다.

1967년부터 1973년까지의 6년간은 산업구조의 다변화가 이루어진 시기로 호남정유주식회사·금성통신주식회사·럭키개발주식회사 등이 설립되었다. 이 기간에 창업주인 구인회가 별세하여 장남 구자경(具滋暻)이 그룹을 승계하였으며, 석유·통신기기·보험·증권업에 진출하였다. 1974년부터 1979년까지는 이 그룹의 고도성장기였다.

내용

금성정밀·럭키석유화학·럭키엔지니어링·금성반도체·금성기전 등의 회사를 설립, 그룹의 주력업종인 화학·전기·전자·통신 부문의 고도성장을 이룩하였다. 마지막으로 1980년 이후 현재까지의 시기는 그룹의 국제화가 추진되고 있는 기간이다.

즉, 유전자공학·생화학·반도체·컴퓨터·광통신 분야에 대한 연구개발투자를 확충하고, 그룹의 2대 주력업종인 화학 부문과 전기전자·통신 부문에 투자를 집중하였다. 1988년 당시 그룹에는 34개의 국내자매회사와 29개의 현지 법인, 82개의 해외사무소가 있으며, 11만여 명에 이르는 종업원이 있었다.

그룹은 국가 수출면에서도 기여가 클 뿐 아니라 국제적 기업으로도 그 성가를 높여나갔다. 향후 컴퓨터·로봇·반도체·광통신·전자의료기기·유전공학·정밀화학·엔지니어링 등의 첨단산업 분야의 투자확대와 현지생산체제 확립, 국제금융시장 진출이 그룹의 청사진으로 제시되었다. 1995년 기업이미지통합전략의 일환으로 현재 명칭인 엘지그룹(LG Group)으로 그룹명을 바꾸었다.

1998년 당시 엘지그룹은 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 독립기업협력체로 각각의 계열사들이 책임경영을 추진하는 전략을 구사하였다. 독립기업협력체는 종전의 상호의존적 결합형태에서 엘지의 브랜드와 경영이념만을 공유하는 형태이다.

이를 위해 엘지는 화학, 전자, 금융 및 서비스 등 3∼4개 주력업종 중심으로 기업의 역량을 집중하는 구조재편을 추진하였다. 엘지는 특히 비주력 사업은 강력히 도태시키고 주력이라도 수익을 내지 못하는 사업에 대해서는 과감히 퇴출시킨다는 방침을 수립하였다.

엘지그룹은 이를 위한 구체적 작업으로 엘지전자와 엘지반도체의 TFT-LCD(초박막 트랜지스터 액정표시장치)사업을 분리, 별도 법인으로 분리키로 했다. 또 분사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엘지산전은 주유기와 세차기 차량정비기기 자동창고 물류설비 등 4개 사업 부문을 EBO(임직원에 의한 매수)방식으로 분사했다.

또한 엘지패션도 코트사업 부문을 분리 독립시켰으며, 엘지전자는 국내 서비스 부문을 엘지전자서비스로, 총무 부문의 일부를 휴먼 풀이라는 회사로 분리키로 했다.

현황

엘지그룹은 경영투명성과 기업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2003년 국내 대기업 최초로 지주회사체제를 구축하였다. 이로 인해 지주회사가 출자를 전담하고, 자회사는 고유사업에 전념하는 선진형 기업지배구조를 제고할 수 있게 되었다. 현재 엘지그룹은 전국에 약 40개의 사업장(공장), 전 세계 120여 개국에 147여 개의 현지법인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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