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는 재무보고(財務報告)·세액산정(稅額算定)과 세무계획(稅務計劃)·감사(監査)·원가회계(原價會計)와 관리회계(管理會計)·비영리회계(非營利會計)·정부회계(政府會計)·회계정보시스템 등을 그 영역으로 하며, 회계학이란 이들 영역에 걸치는 회계를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학문 분야를 일컫는다. 재무보고와 관련 있는 회계는 재무회계라 부르며, 세액산정과 세무계획을 다루는 회계는 세무회계라고 통칭한다.
재무회계·세무회계·원가회계·관리회계·회계감사는 주로 기업회계에 속하는 분야이고, 신탁회계·정부회계·국민소득회계는 기업 아닌 비영리단체회계에 속하는 분야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엄밀하게 회계를 분류하면 기업회계·비영리단체회계로 분류되어야 하겠으나, 통상적으로는 회계를 기업회계로 좁게 해석하고 있다. 따라서, 회계학이란 기업회계를 주된 연구대상으로 하는 학문으로 보고 있다.
우리 나라 기업회계는 <송도치부법>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다. 1916년에 현병주(玄丙周)가 ≪사개송도치부법 四介松都治簿法≫을 출판하였으나, 이 ≪사개송도치부법≫이 출판되기 전에 이미 이 치부법이 널리 실무에 적용되고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
≪사개송도치부법≫이 체계적·조직적으로 현대기업의 실무에 적용된 실례는 1898년부터 1905년까지 대한천일은행(大韓天一銀行)에서 이용한 회계기록을 들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현병주의 ≪사개송도치부법≫도 현병주가 개성사람인 김경식(金璟植)·배준여(裵俊汝)의 교열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아도 1916년보다는 오래전부터 이 치부법이 실무에 적용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1905년 10월 11일에 개최되었던 <대한천일은행주주총회의사록>에 따르면 “현재와 같이 통화를 정배할 시기를 맞이하여 본은행 제반사무와 기장도 외국의 조례를 참조하며 신식(新式)에 따르는 것이 가한 즉, 본년연종회계(本年年終會計)를 본월 말로 종결하고 개월(開月)부터는 새로운 방법에 따라 기장함으로써 검열에 편리하도록 할 것”으로 의결함으로써, 송도치부법에 의한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회계는 종말을 고한 것으로 보인다.
대한천일은행이 새로운 회계제도를 채택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일제에 의한 강점이 이루어지고 그 다음부터는 우리 나라 회계학의 암흑기에 접어든다.
이와 같은 암흑기에서도 우리 나라 사람에 의한 계리사(計理士)의 활동은 특기할만하다. 그 대표적인 인물로서는 1932년 7월 서울 종로2가에서 개업한 윤정하(尹定夏)와 1935년 12월 개업한 구자욱(具滋旭)을 들 수 있다.
이들은 회계고문·청산인·검사인(檢査人)·세무신고·회사설립·회계정리·결산지도·장부조직(帳簿組織)·재산조사, 영업양도 및 합병, 손익계산서 및 대차대조표 작성 등 광범위한 업무를 수행하였다. 이들 외에도 1940년대 초에는 일본과 우리 나라에서 상당수의 계리사가 활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제강점 하에서 회계업무를 전문직업으로 삼았던 선구자적 인사들은 광복 후의 군정과 접촉하여 적산감사(敵産監査)를 실시, 1945년 9월에는 한국공인회계사회(韓國公認會計士會)의 전신인 조선계리사회(朝鮮計理士會)를 설립했고, 1950년 3월 <계리사법 計理士法>을 통과시키는 데 공헌했으며 나아가서는 회계의 발전에 공헌했다고 하여야 할 것이다.
한편, 일제강점기 때 대학 또는 전문학교에서 회계관계 교수로서 회계학의 발전에 공헌한 사람으로서는 일본 메이지대학(明治大學) 조교수를 지낸 김순식(金洵植)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며, 윤정하·구자욱도 보성전문학교(普成專門學校)·연희전문학교(延禧專門學校)에서 교수직을 맡아 후진양성을 통한 회계학의 발전에 공헌하였다고 한다.
특히, 김순식은 광복 후에는 거의가 일본서적에 의존하던 회계학계에 우리말로 된 ≪부기학 簿記學≫과 ≪회계학≫을 1956년에 장왕사(章旺社)에서 출판하여 당시의 회계학 발전에 크게 공헌하였다고 본다.
1950년대 이후의 우리 나라 회계학은 대학교수에 의하여 주도되었으며, 김순식 외에도 이해동(李海東)·윤병욱(尹炳旭) 등의 활약도 눈부신 바 있다. 그러나 당시의 우리 나라 회계학은 일본회계학의 영향을 받아 독일계통의 회계가 주축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와 같은 회계조류에 변화를 가져온 계기는 1956년 미국의 워싱턴대학과 고려대학교·연세대학교 사이에 맺어진 교수교환계약이었다. 이 계약에 따라 김순식·조익순(趙益淳)·유세환(劉世煥)·김규삼(金奎三) 등이 도미(渡美), 유학하여 일본편향적인 회계학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1958년 7월 <재무제표규칙 財務諸表規則>이 발표되고 이와 함께 <기업회계원칙 企業會計原則>이 권고되었으나, 당시의 기업환경이 회계의 사회성을 인정할 만큼 성숙되지 못하였으므로 명목적인 존재에만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는 정도에 불과하였다고 본다.
서울대학교 또한 미네소타대학과의 교수교환계획에 따라 이정호(李正浩)·남상오(南相午) 등이 미국에서 수학하고 귀국하였다.
주요 대학의 회계학 교수가 미국교육을 본격적으로 받은 사람들로 충원됨에 따라 회계학계도 일본편향성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다양한 분야에 걸쳐 연구가 이루어졌다.
1973년 2월부터 개정된 <증권거래법 證券去來法>에서는 상장법인(上場法人), 공모증자법인(公募增資法人), 사채발행법인(社債發行法人), 상장하려는 법인, 기타 재무부장관이 지정하는 법인 등이 정부에 제출하는 유가증권신고서에 첨부하는 재무제표는 공인회계사의 감사보고서가 첨부되도록 규정하였으며, 이에 따라 1958년에 제정한 <재무제표규칙> 또한 대폭적인 수정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그 결과 1974년 7월 대통령령인 <상장법인 등의 회계처리에 관한 규정>과 <상장법인 등의 재무제표에 관한 규칙>이 공포되었다. 이때만 하여도 젊은 신진교수들이 이러한 규정이나 규칙의 개정작업에 참여할 수 없었기 때문에 개정된 규정과 규칙에는 일본편향적인 내용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1980년 12월에 공포된 <주식회사의 회계감사에 관한 법률>에 따라 회계감사를 받아야 할 법인이 상장법인뿐만 아니라 일정금액 이상의 외형규모와 자본금을 가진 법인까지 포함됨에 따라 회계기준도 상장법인뿐만 아니라 다른 감사대상법인도 준거하여야 할 것으로 개정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이때의 개정작업에는 송재(宋梓)·남상오(南相午)·신정식(申廷植) 등 신진교수가 참여하여 1981년 12월에 만든 <기업회계기준 企業會計基準>은 일본편향성에서 탈피한 것으로 발전하였다.
1970년대 말 우리 나라 회계학 발전에 공헌한 학자들이 갖고 있는 공통적인 양상은 그 접근방법이 모두 고전적 접근방법 또는 의사결정유용성접근법(意思決定有用性接近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였으며, 그것도 회귀분석(回歸分析)이나 실험실연구방법을 구사하지 않는 접근법에 의존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실증적 연구를 위한 수학적 능력을 중시하는 사람들이 새로운 차원의 학파를 형성하였으며, 이와 같은 새로운 학풍은 최근의 회계학 논문의 대부분이 회계정보와 주가(株價)의 관계, 회계정보와 현금 흐름이라든가 도산 등의 예측을 위한 회귀분석이 주축이 되고 있으며, 앞으로는 회계정보와 정보이용자의 행동반응 파악을 여러 가지 새로운 접근방법으로 연구할 것이고 회계정보원가(會計情報原價)와 그 효익(效益)을 비교해 의사결정을 내리는 정보경제학적인 연구결과가 등장하고 있다.
이는 회계학을 회계학의 영역 안에서만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여러 학문의 도움을 받아 회계학을 연구하려는 것이다. 이에 따라서 회계를 증권시장과 관련시켜 연구하려는 사람은 통계학·수학은 물론 재무론(財務論)·미시경제학(微視經濟學) 등에 정통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며, 형태적인 면에서 회계를 연구하려는 사람은 인식론·심리학·통계학·수학 등에도 정통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