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높이 2.46m. 본래 구 여주읍 과수원 내의 옛 절터에 있었던 것을 1958년 11월에 한강변에 있는 영월루(迎月樓) 밑의 공원 산중턱으로 옮겨 바로 옆의 여주 하리 삼층석탑(보물, 1963년 지정)과 나란히 세웠다.
이 석탑은 2중기단 위에 3층 탑신을 건립하여 일반형 석탑에 속하나, 일반적인 양식과는 다소 다른 기단부가 주목된다. 즉, 기단 밑에 이중으로 여러 장의 석재(石材)를 사용하여 대석(臺石)을 삼고 그 위에 1석으로 된 하층 기단(下層基壇) 면석을 얹었다.
면석 각 면에는 우주(隅柱)나 탱주(撑柱)의 표현이 없고 다만 1면 2구식의 안상(眼象)이 있는데, 지선(地線)에서 꽃모양의 무늬가 솟아 고려시대 안상의 특징을 보인다.
또 갑석은 1석으로 상면에 16판(瓣)의 연화(蓮華)가 조각되었으나, 면석의 안상과 함께 마멸이 심하다. 윗면 중앙에는 낮은 굄 1단이 있어 아무 조각이 없는 1매석의 상층 기단 면석을 받았다. 상층 기단 갑석은 매우 두껍고 밑에는 안쪽으로 구부러진 곡선으로 부연(副椽)에 대신하고 윗면에는 2단의 탑신굄이 새겨져 있다.
초층 탑신은 단일석으로 4면에 우주형(隅柱形)이 희미하게 남아 있을 뿐이고, 2층 이상은 급격히 체감되면서 옥개 윗면에 붙여 1석으로 만들었다. 모두 각 면에 우주형이 있고 3층 옥개석 위에 4층 탑신으로 보이는 석재가 옥개와 한 돌인 채 남아 있을 뿐이다.
옥개석은 3층이 남아 있는데, 받침은 각 층 3단이고 추녀는 매우 두껍고 전각(轉角)에 이르러 약간의 상향(上向)이 있다. 낙수면(落水面)의 경사는 극히 완만하며 전각의 반전(反轉)도 희미하다.
하층 기단 갑석의 복련(覆蓮)이나 상층 기단 갑석의 부연양식은 매우 드물게 보는 특이한 양식이다. 그러나 각 부 부재가 모두 투박하여 전체의 형태가 고준(高峻)해보인다. 질이 좋지 않은 석재를 사용한 이유도 있지만, 조각의 수법도 우수하지 못하며 옥신과 옥개석을 1석으로 만들어 버리는 등 약화의 경향이 역력하다.
또, 현재 최상층의 옥신과 옥개석의 비례는 2층 옥개석과 3층 옥신의 크기와 맞지 않아 그 사이에 1층이 빠지지 않았나 의심된다. 따라서, 원래는 5층탑이 아니었던가도 추정된다.
이 탑의 초층 탑신석 윗면에서 크기 16.7㎝×10㎝, 깊이 3㎝의 얕은 사리공(舍利孔)이 발견되었으나 사리장치는 완전히 없어졌고, 하대석 밑에서 높이 4.4㎝의 동제여래좌상(銅製如來坐像)이 옮겨 세울 당시에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 탑의 조성 연대는 각 부의 조각과 조탑양식으로 보아 고려 후기에 속하는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