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 영국사 삼층석탑

  • 예술·체육
  • 유적
  • 남북국
  • 국가문화유산
충청북도 영동군 양산면 영국사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석조 불탑.
국가문화유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정영호 (한국교원대학교, 미술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영동 영국사 삼층석탑 정측면 미디어 정보

영동 영국사 삼층석탑 정측면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충청북도 영동군 양산면 영국사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석조 불탑.

개설

1971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원래 옛 절터에 쓰러져 있던 것을 1942년에 주봉조사(朱奉祖師)가 지금의 대웅전 앞으로 옮겨 세웠다고 한다. 장대석 4, 5개씩을 한 변으로 삼고 석단을 구축한 위에 건립하였는데, 현재의 사찰 방향을 따라 동향을 취하고 있다.

내용

높이 3.15m인 이 석탑은 신라식 일반형으로 2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봉안하였다. 지대석은 따로 없으며 하층 기단 면석 하단에 굽을 둘러 통식(通式)의 각형(角形) 받침을 삼았고, 면석은 4매석으로 이루어졌는데 각 면에는 3구씩의 세장(細長)한 안상(眼象)이 조각되었다.

하층기단 갑석도 4매석으로 결구(結構)하였는데 상면의 모서리에는 각기 합각(合閣)이 표시되었고, 특히 상단부에 반전(反轉)의 표현이 있어 주목된다. 상면 중심에는 큼직한 4분원(四分圓)의 몰딩(moulding: 테두리장식)과 각형의 낮은 받침을 마련하여 상층 기단을 받치고 있다.

상층 기단 면석은 널찍한 판석(板石)을 각 면에 1매씩을 세워 4매석으로 조립하였고, 각 면에는 우주(隅柱)나 탱주(撑柱)가 없으며 우주 부분까지 꽉 차도록 전면에 1구씩의 큼직한 안상을 오목새김하였는데 정교한 각 안상의 수법이 주목된다. 그러나 1942년 현재 위치로 옮겨 세울 때 상층 기단 면석의 위치를 거꾸로 배치하여 현재 안상의 모양도 뒤집혀 있다.

상층 갑석은 1매석으로 조성되었는데 하면에 부연(副椽)이 있으며 상면의 네 귀퉁이 부분은 하층 갑석 상면과 같이 합각이 뚜렷하다. 상면 중앙에는 원호(圓弧)의 몰딩과 높직한 각형 받침을 각출하여 탑신부를 받치고 있다.

탑신부는 탑신석(塔身石)·옥개석(屋蓋石)이 각각 한 돌이며, 각 탑신은 양 우주가 정연하게 각출되고 초층에만은 1면에 문비(門扉)가 새겨졌는데, 장방형으로서 두 줄의 융기선(隆起線)으로 표시하였다. 그리고 내면은 중앙에 세로선을 오목새김하여 양쪽의 문짝을 표현하고 있으며, 상부에는 양면에 걸쳐 큼직한 자물쇠 하나가 돋을새김되었고, 그 밑으로 양쪽에 한 개씩의 둥근 문고리가 조각되어 있다.

각 층의 옥개석은 받침이 4단씩이고 처마에는 낙수(落水)홈이 정연하게 오목새김되었으며, 정면(頂面) 중앙에 각형으로 1단씩의 받침을 각출하여 그 위의 탑신을 받치고 있다.

낙수면은 평박하고 4면의 합각이 뚜렷한데 각 귀퉁이에 곡선이 있어서 다른 탑에 비하여 융기된 인상을 주며, 아울러 네 모서리의 전각(轉角)에는 반전이 심하게 나타나 있다. 그리고 각 전각에는 중심부와 좌우 양면에 각 1개씩 도합 3개의 풍경공(風磬孔)이 뚫어져 있는데 그 유품은 하나도 없다.

3층 옥개석 윗면에는 각형 1단의 노반(露盤)받침이 각출되고 그 중심에 지름 7.5㎝, 깊이 8㎝의 둥근 찰주공이 있다. 상륜부는 각각 한 돌로 된 앙화(仰花)·보륜(寶輪)·보개(寶蓋)와 수연(水煙: 탑의 구륜 윗부분에 불꽃 모양으로 만든 장식) 등이 남아 있으나, 노반은 없어졌다.

앙화는 방형(方形) 통식으로서 하면에 각형의 받침이 있고, 상면의 가장자리에는 복엽(複葉)의 입상형(立狀形) 앙련이 조각되고, 중앙에 찰주공이 관통되어 있는데 연판은 각 변 중앙에 1판, 그리고 네 귀에 1판씩으로 도합 8판을 배치하였다. 보륜은 일반적 양식의 원형으로서 중앙에 찰주공이 관통되어 있고, 측면에는 8판의 복엽연화문이 조식되었는데, 각 판내에는 장식문양의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 있다. 보개는 8각으로 각 처마가 유려하게 곡선을 이루었고 전각의 반전도 심하여 잘 어울리며, 그 상단에는 산(山)형의 귀꽃이 조각되었는데, 귀꽃의 상부는 곧 낙수면의 각 합각과 연결되었고, 그 상부 중앙에는 찰주공이 관통되었다.

수연은 十자로 된 각 면에 유려한 화염문(火焰文)이 조각되고, 정상의 중심에 찰주공이 관통되었는데 전체의 형태는 일반적인 양식을 따라 구형(球形)을 이루었다. 이 석탑은 기단과 탑신부의 양식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 말기인 9세기 말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특징

이 석탑은 기단부에 새겨진 안상이 독특하며, 1층 탑신에 새겨진 자물통과 문고리가 표현된 문비의 조각이 특징적이며 탑신에 비해 넓게 조성된 지붕돌 등에서 9세기 석탑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의의와 평가

이 석탑은 노반을 제외한 상륜부의 부재가 모두 보존되어 전하는 귀중한 탑으로, 통일신라 하대 탑 중 우수한 석탑이다.

참고문헌

  • - 『문화재대관』보물2(한국문화재보호협회, 대학당, 1986)

  • - 『국보』탑파(진홍섭 편, 예경산업사, 1983)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