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서울특별시 서대문구에 있는 조선시대 객관이자 중국의 사신을 맞아들이던 모화관 앞에 세웠던 영은문의 초석.
내용
『중종실록』등의 문헌 기록에 의하면, 처음에는 2개의 기둥을 세운 1칸 규모의 문으로 건립하였는데, 지붕에는 푸른색 기와가 덮였다고 전한다. 철거되기 이전에 찍은 사진에도, 2기의 긴 주춧돌 위에 두리 기둥을 올리고, 기둥 머리에는 창방(昌枋)과 평방(平枋)을 얹은 뒤 평방 위에 공포(栱包) 6구(具)를 결구하였으며, 공포 위에 겹처마의 우진각 지붕을 놓은 모습이다. 아울러 지붕의 용마루는 회를 높이 발랐는데, 그 양쪽 끝에는 취두(鷲頭)를 놓았으며, 우진각 지붕의 추녀마루에도 잡상을 얹었다. 또한 양쪽 기둥에는 꽃 무늬를 연이어 새긴 낙양을 달고서 그 가운데 부분에 편액(扁額)을 달았다.
현재 남아 있는 2기의 주춧돌은 2단의 받침돌 위에 긴 기둥이 올려져 있는 모습이다. 곧 네모난 아래바닥돌 위에 있는 네모난 윗받침돌에는 각 면마다 안상(眼象)이 2구씩 조각되어 있다. 그 위의 긴 기둥은 단면 4각의 각 모서리를 둥글게 깎아 놓은 모습이다.
참고문헌
- 『중종실록(中宗實錄)』
- 『서양인이 만든 근대 전기 한국 이미지』Ⅰ-서울풍광-(홍순민 외, 청년사, 2009)
- 『서울특별시사』-고적편-(서울특별시, 1964)
- 「영은문, 모화관의 건립과 독립문, 독립관으로의 변천」(김세민,『향토서울』82, 서울시사편찬위원회,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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