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경상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권 32, 제사조에는 “일월제를 행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나 그것이 일월지와 연관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따라서 일월지에 관한 직접적인 기록으로 가장 오래된 것은 『신증동국여지승람』 영일현 고적조로 보아야 할 것이다.
『삼국유사』 기이편(紀異篇)의 연오랑 세오녀(延烏郞細烏女)설화에서 이 지역을 영일현이라 하였다는 내용이 있으나 임정(臨汀)을 영일현으로 개칭한 것이 고려 초이고 『삼국사기』·『동국사략(東國史略)』에 이 설화에 관한 기록이 없는 것으로 미루어 신라 때가 아닐것이라는 해석을 하고 있다.
그러나 까마귀가 해의 상징이고, 일월은 부부관계나 군신관계를 상징하는 부부일월설(夫婦日月說)과 군신일월론(君臣日月論)이 오래전부터 우리의 의식세계를 지배하였다는 사실로 보면 일월지와 삼국유사의 설화가 전혀 무관하지는 않을 듯하다.
또 설화를 통해 고대부터 일본과 교섭관계를 가지고 있어서 인적·물적 교류가 활발했음을 추정할 수 있다. 따라서 이 못은 늦어도 고려건국 이전부터 존재했다고 보여지며, 고려 초부터는 못 주변에 목장이 있었는데 효종 때 장기현(長鬐縣)의 북목(北牧)으로 옮겼다는 설이 있다.
그리고 공민왕 때 영일현 감무(監務) 이인부(李仁夫)가 세웠다는 일월지사적비(日月池史蹟碑)와 봄·가을로 주민들이 하늘에 제사지낸 천제단(天祭壇)이 있었으나 일제강점 초기에 일본인들이 파괴하였다고 한다.
이미 천여 평 정도는 매립된 상태에서 1945년 광복 후 미군이 이 지역을 매립·활용하고자 하였으나 지방유지들의 진정으로 중단했으며, 현재까지 그 면적을 유지하고 있다. 지금 이 못은 군사작전상 해병부대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못 가에는 근래에 세운 일월지사적비와 연오랑·세오녀 설화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