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종도 송산 선사유적 ( )

선사문화
유적
인천광역시 중구 중산동에 있는 신석기시대 야외 화덕자리 단독 유적.
이칭
약칭
영종도송산유적(永宗島松山遺蹟)
유적
건립 시기
신석기시대
소재지
인천광역시 중구 중산동
내용 요약

'영종도송산선사유적'은 인천광역시 중구 중산동에 있는 신석기시대 야외 화덕자리 단독 유적이다. 유적은 영종도 송산마을 남쪽 해안의 동서로 길게 뻗은 모래언덕 위에 자리한다. 유적의 층위는 ‘표토층-노란모래층-검은모래층-흰모래층’으로 구분되며, 검은모래층이 신석기시대 문화층(文化層)이다. 이 층에서 신석기시대 야외 화덕자리 21기가 조사되었다.

정의
인천광역시 중구 중산동에 있는 신석기시대 야외 화덕자리 단독 유적.
발굴경위 및 결과

1990년 인천 지역 선사유적을 조사하던 김석훈(인천과학고)에 의해 처음 발견된 후 서울시립대학교박물관 학술조사단과 합동으로 조사하여 선사시대 주1이 확인되었다. 이후 1992년과 1993년 인천시립박물관의 지표 조사를 통해 학계에 알려지게 되었고, 1995년 서울시립박물관에 의해 정밀 발굴 조사되었다.

형태와 특징

'영종도송산선사유적(永宗島松山先史遺蹟)'은 신석기시대에서 고려시대에 걸치는 층위유적으로 주된 문화층은 신석기시대의 층이다. 유적의 층위는 ‘표토층-노란모래층-검은모래층-흰모래층’으로 구분되며, 검은모래층이 신석기시대 문화층이다. 이 층에서 신석기시대 화덕자리 21기가 조사되었다. 화덕자리는 대부분 양상이 유사하다. 주로 바닷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편암계의 각진 암석들을 이용하여 제작한 부석식(敷石式) 화덕자리이다.

다만, 5호 화덕자리만 자갈돌과 모난 돌을 쌓아 만든 위석식으로 주목된다. 규모는 대체로 70x70㎝의 작은 것부터 490x350㎝ 대형의 것까지 다양하다. 화덕자리에서 출토된 숯으로 주2한 결과 B.P 5080∼5365년으로 측정되었다. 유물은 주3, 주4 없는 돌화살촉, 흑요석제 석기, 수정새기개 등 토기 및 토제 가락바퀴, 용도 미상의 토제품 등이 출토되었다. 석기는 흑요석제 밀개 혹은 긁개로 판단된다.

의의 및 평가

유적 인근에 있는 '용유도남북동유적'에서도 화덕자리만 조사되었다. 분석 결과 식물성 열매 등의 식량 처리와 관련된 유적으로 추정되고 있어 '영종도송산선사유적'도 식량 자원 획득을 위한 반복적인 단기 점유 유적으로 평가된다.

참고문헌

단행본

김영준, 『한국고고학사전-신석기시대편』 「영종도 송산 선사유적」(국립문화재연구소, 2012)
박희현, 김석훈, 김영관, 염경화, 『영종도 송산 선사유적』(서울시립대학교박물관, 1996)
주석
주1

토기, 석기 따위의 고대 유물을 포함하고 있는 지층.    우리말샘

주2

방사성 동위 원소로 물질의 생성 시기를 측정하는 일. 방사성 원소가 일정한 반감기를 두고 붕괴한다는 사실에 기초하여 암석, 운석, 지층의 생성 연대, 지구의 나이 따위를 측정하며, 고고학, 인류학 따위의 분야에서 이용한다.    우리말샘

주3

표면에 빗살 같은 줄이 새겨지거나 그어져 있는 신석기 시대의 토기. 붉은 찰흙을 이용하여 표면에 빗살 같은 평행선이나 물결 모양을 이룬 점선 따위의 기하학적 무늬를 넣어 얄팍하게 만들었다. 핀란드, 러시아, 몽골, 한국 등지에 널리 분포한다.    우리말샘

주4

칼, 괭이, 호미 따위의 자루 속에 들어박히는 뾰족하고 긴 부분.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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