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청구리 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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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에 있는 마을 주민의 신앙 및 숭배의 대상인 선돌.
시도문화유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성병희 (안동대학교, 민속학)
  • 최종수정 2024년 06월 04일
영주 청구리 입석 전경 미디어 정보

영주 청구리 입석 전경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에 있는 마을 주민의 신앙 및 숭배의 대상인 선돌.

내용

1997년 경상북도 민속자료(현, 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2기. 마을 동구 밖에 5m 간격을 두고 2기가 나란히 서 있다. 이 입석은 각주형(角柱形) 화강암 자연석을 세운 것으로 동쪽의 큰 입석 뿌리에 지석묘 성혈석 1기가 누워 있다.

동쪽 입석은 높이 210cm, 둘레 225cm이며, 서쪽 입석은 높이 170cm, 둘레 172cm, 지석묘는 방형(方形)의 낮은 돌이다. 이 입석 자체가 이곳 옥계(玉溪)마을 주변의 신앙 및 숭배의 대상물이나 1970년대초까지는 이들 입석 뒤쪽에 마을 수호신을 모시는 당(堂)집이 있어서 음력 정월 보름날 자시(子時)에 동제사를 지냈다.

이 입석이 언제 세워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후대에 와서 건립한 당집은 이 마을에 사람들이 입향(入鄕)한 700년 전의 건립으로 알려져 있다. 그 때는 이미 입석이 있었던 것으로 전한다. 이곳은 대체로 50평 정도 되며 큰 떡갈나무 두 그루와 400년 가량 된 적송(赤松) 7그루가 서 있다.

옛날에는 이러한 고목이 훨씬 더 울창하였으며 부지도 넓었는데 인근의 전답이 차츰 침식하여 현재의 면적으로 줄어들었다. 입석은 기자(祈子)나 무제(巫祭) 또는 비손하는 곳으로 마을 주민의 신앙심이 현재도 대단하다.

특히 이곳은 청구리 옥계마을의 성소(聖所)로 조선 초기 순흥도호부(順興都護府) 시절 관아에서 단종의 적소(謫所)인 영월(寧越)까지 금성대군(錦城大君)과 이보흠(李甫欽) 부사가 오르내렸다는 전설이 전하는 관로(官路)가에 위치하고 있다.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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