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경상북도 민속자료(현, 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2기. 마을 동구 밖에 5m 간격을 두고 2기가 나란히 서 있다. 이 입석은 각주형(角柱形) 화강암 자연석을 세운 것으로 동쪽의 큰 입석 뿌리에 지석묘 성혈석 1기가 누워 있다.
동쪽 입석은 높이 210cm, 둘레 225cm이며, 서쪽 입석은 높이 170cm, 둘레 172cm, 지석묘는 방형(方形)의 낮은 돌이다. 이 입석 자체가 이곳 옥계(玉溪)마을 주변의 신앙 및 숭배의 대상물이나 1970년대초까지는 이들 입석 뒤쪽에 마을 수호신을 모시는 당(堂)집이 있어서 음력 정월 보름날 자시(子時)에 동제사를 지냈다.
이 입석이 언제 세워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후대에 와서 건립한 당집은 이 마을에 사람들이 입향(入鄕)한 700년 전의 건립으로 알려져 있다. 그 때는 이미 입석이 있었던 것으로 전한다. 이곳은 대체로 50평 정도 되며 큰 떡갈나무 두 그루와 400년 가량 된 적송(赤松) 7그루가 서 있다.
옛날에는 이러한 고목이 훨씬 더 울창하였으며 부지도 넓었는데 인근의 전답이 차츰 침식하여 현재의 면적으로 줄어들었다. 입석은 기자(祈子)나 무제(巫祭) 또는 비손하는 곳으로 마을 주민의 신앙심이 현재도 대단하다.
특히 이곳은 청구리 옥계마을의 성소(聖所)로 조선 초기 순흥도호부(順興都護府) 시절 관아에서 단종의 적소(謫所)인 영월(寧越)까지 금성대군(錦城大君)과 이보흠(李甫欽) 부사가 오르내렸다는 전설이 전하는 관로(官路)가에 위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