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말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1399년(정종 1)에 동북면절제사 손흥종(孫興宗)이 감박산(甘博山) 아래로 이건하였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01년(선조 34) 부사 허성(許筬)과 강신(姜紳)이 중건하였으며, 1606년 부사 이광악(李光岳)이 중수하였다. 1629년(인조 7)에 부사 민형남(閔馨男)과 이명(李溟)이 동서 협실과 동재(東齋)·서재(西齋)를 신축하였다.
1669년에 부사 박지용(朴之埇)이 중수하고 그 뒤 수차 이전과 중수를 하였으며, 1908년에는 명륜학교(明倫學校)로 운영되기도 하였다.
당시의 경내건물로는 대성전·명륜당·동재·서재·전사청(典祀廳) 등이 있었으며, 대성전에는 5성(五聖), 10철(十哲), 송조6현(宋朝六賢)과 동무·서무에 우리 나라 18현(十八賢) 및 중국 94현의 위패를 봉안하였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하며 초하루·보름에 분향을 하여왔다. 1950년대 이후의 사항은 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