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의 유학교육과 지방인의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임진왜란 뒤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으며, 1904년 군수 김용수(金容秀)가 향교 내에 명륜학원(明倫學院)을 설치하였다.
경내의 건물로는 대성전·명륜당·신문(神門)·동무(東廡)·서무(西廡) 등이 있었으며, 대성전에는 5성(五聖), 송조6현(宋朝六賢), 우리 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를 봉안하였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전답과 노비·전적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조선 후기 이래 향교는 교육 기능이 쇠퇴하고 대신 선현에 대한 제향을 통한 교화 기능을 주로 담당하였다. 봄과 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해왔으며, 1950년대 이후의 상황은 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