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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효종 사후 자의대비의 복제에 대한 신하들의 주장을 편집한 예서.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신동호 (한학자)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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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 효종 사후 자의대비의 복제에 대한 신하들의 주장을 편집한 예서.

내용

불분권 8책. 필사본. 1814년(순조 14) 필사되었으며 편자는 미상이다. 권두에 윤치영(尹致英)·현도원(玄道源)의 서문이 있다. 규장각 도서에 있다.

송시열(宋時烈)·허목(許穆)·이경석(李景奭)·원두표(元斗杓)·송준길(宋浚吉)·윤휴(尹鑴)·박손제(朴遜齊)·이세필(李世弼)·송상민(宋尙敏) 등의 상소와 승정원의 계(啓) 등이 시기순으로 편집되었다.

우선 송시열은 예관의 문의에 국제(國制)는 장자·서자를 막론하고 모두 기년복으로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허목은 이에 반박하여 효종이 대비의 적자가 되고 천조즉위(踐阼卽位)하였으니 당연히 3년으로 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 뒤 이와 관련하여 각 당파의 정치적 이해가 3년설과 기년설로 대립, 충돌하였다. 원두표·송준길 등은 나름대로의 고례해석과 조선왕조의 기왕의 관례를 들어 송시열의 기년설을 지지하는 상소를 남겼으며, 윤휴·박손제·윤증(尹拯) 등은 3년설을 주장하였다.

이 논쟁의 과정 속에서 예론에 대한 단순한 학문적 판단을 넘어 상호간 선유(先儒)를 공박하였다고 하여 학문적 정통성 및 정치적 문제로 비화하였다. 이는 왕권의 정통성과 관련된 문제로 당쟁의 본질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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