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공신회맹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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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6년 왕세자와 5공신 및 그 자손들과 함께 회맹하여 천지산천과 종묘사직에 고하고 연명한 것을 모아 엮은 관찬서.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최승희 (서울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오공신회맹문 미디어 정보

오공신회맹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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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456년 왕세자와 5공신 및 그 자손들과 함께 회맹하여 천지산천과 종묘사직에 고하고 연명한 것을 모아 엮은 관찬서.

내용

그 내용은 오공신과 그 자손에게 내려 준 나라의 은혜를 잊지 말고 동심협력해 국은을 갚기에 힘쓸 것과, 왕에게 충성을 다하고 공신 자손간에도 단결하고 협력할 것을 신명에 맹세한 것이다.

이 문서는 세로 54㎝, 가로 620㎝의 두루마리로 되어 있다. 앞부분 약 4, 5행(88자)은 훼손, 탈락되어 있다. 탈락된 내용은 『세조실록』에 실려 있어 복원할 수 있다. 앞부분에 회맹문(199자)이 있고, 바로 이어 회맹에 참가한 왕자와 공신 자손의 군호·공신호·직함·성명 및 수결(手決)이 있다.

왕자로는 양녕대군(讓寧大君)을 비롯해 3대군과 9군을 앞에 썼다. 이어 정인지(鄭麟趾)·이사철(李思哲)·정창손(鄭昌孫)·박종우(朴從愚)·윤사로(尹師路)·강맹경(姜孟卿)·이계전(李季箭)·이징석(李澄石)·정현조(鄭顯祖)·신숙주(申叔舟)·황수신(黃守身)·박중손(朴仲孫)·이승평(李昇平)·조서안(趙瑞安)·권준(權蹲)·권람(權擥) 등을 포함해 226인이 기재되어 있다. 그 중 178인이 수결을 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이 문서는 현존하는 공신회맹문으로서는 가장 오래된 것 중의 하나이며, 당시 오공신과 그 자손들의 동향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사료이다. 또 다른 오공신회맹문은 전라남도 곡성 좌명공신의 후손이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규장각도서에 있다.

참고문헌

  • - 『세조실록(世祖實錄)』

  • - 『朝鮮史料集眞』續2 (朝鮮史編修會,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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