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보경(保卿). 오달천(吳達天)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오도융(吳道隆)이고, 아버지는 오수량(吳遂良)이다. 어머니는 영의정 여성제(呂聖濟)의 딸이다. 우의정 오명항(吳命恒)의 형이다.
1684년(숙종 10) 진사시에 합격하고, 1694년 알성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정언(正言)이 되었다. 성품이 강직하여 조정에 척완의 세력이 팽배함을 탄핵하였으며, 종종 직간을 잘하여 한때 파직당하기도 하였다.
1715년 『가례원류(家禮源流)』의 시비가 발생하여 노론·소론의 대립이 첨예화되었을 때, 책의 발문에 윤증(尹拯)의 행동을 비난하였고, 이를 계기로 부제학 정호(鄭湖)를 탄핵하여 파직시켰다.
그 뒤 우의정 이건명(李健命)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격렬한 문장으로 이조판서 김구(金構)를 탄핵하기도 하는 등, 직간을 잘하여 자주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문장과 글씨가 뛰어나고 경사(經史)에도 조예가 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