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두원(荳原: 흥양). 자는 겸문(謙文). 아버지는 오영로(吳寧老)이며, 어머니는 홍구(洪龜)의 딸이다.
1450년(문종 즉위년) 식년문과에 정과로 급제하여 예문관검열에 제수되었고, 1453년(단종 1) 승정원주서(承政院注書)에 올랐다.
그 뒤 사헌부감찰·경기도사(京畿都事)를 거쳐 1458년(세조 4)에는 병조정랑에 승진되었으며, 체찰사 한명회(韓明澮)의 종사관이 되었다. 이때 한명회와 긴밀한 관계를 맺었으며, 이후 한명회의 영향으로 예문관직제학에 초배(超拜: 차례를 뛰어넘어 제수됨)되었다.
성천부사를 거쳐 예문관직제학에 재임된 뒤 승정원우부승지에 승진되었다. 1465년(세조 11) 평안도관찰사가 되어 1467년 건주위(建州衛) 야인토벌에 참여하고, 1468년(세조 14)에 예조참판에 올랐다. 1469년(예종 1)에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거쳐 대사헌에 임명되었으며, 1471년(성종 2) 3월에 좌리공신(佐理功臣) 4등에 책록되고 흥원군(興原君)에 봉하여졌다.
같은 해 동지중추부사가 되었고, 경상도관찰사를 거쳐 전라도관찰사에 재직하던 중 대간으로부터 부당하게 재물을 탐하였다는 내용의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다. 시호는 양체(襄替)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