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은 다음과 같은 부류와는 “결국 함께 손잡고 요순(堯舜)·주공(周公)·공자(孔子)의 문으로 들어갈 수 없다”고 하였다.
① 성리학: 사물의 이치와 인간의 본성을 알아 수양을 통해 천도를 실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데, 요즘의 성리학자들은 “이(理)니 기(氣)니, 성(性)이니 정(情)이니, 체(體)니 용(用)이니, 본연(本然)이니 기질(氣質)이니, 이발(理發)이니 기발(氣發)이니, 이발(已發)이니 미발(未發)이니, 단지(單指)니 겸지(兼指)니, 이동기이(理同氣異)니 기동이이(氣同理異)니, 심무선악(心無善惡)이니 심유선악(心有善惡)이니”를 논의하는 데 정력을 소모하고 있다.
논의는 수천의 줄기와 가지로 뻗어 자기와 다른 주장을 하면 상대를 비난하고 동조자를 모아 심각한 분쟁을 야기한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진정으로 일용에 필요한 학문에는 관심도 능력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학문을 해도 그저 산림(山林)으로만 들어가려 하고, 관직을 주면 전곡(錢穀)·갑병(甲兵)·송옥(訟獄)·빈상(擯相) 등의 실무적인 행정이나 제도 등등에는 손을 쓸 수가 없다. 이런 학문을 어디에 쓰겠는가.
② 훈고학: 경전의 글자에 매이기보다 그것을 삶의 지표와 수양의 도구로 삼고자 출범한 성리학이 또 다른 이론적 난삽과 착종에 빠지면서 한대에 발흥했던 훈고학이 새로이 대두하였다. 지금의 학자들은 훈고는 한대의 성과를 토대로, 의리는 송대의 성과를 토대로 하는 절충을 표방했지만, 실제는 주충석어(注蟲釋魚)의 훈고에 전 에너지를 투입하였다. 전래의 다양한 주석에 대한 가치중립적 태도와 박식을 자랑하는 자세는 경전의 정신을 자신과 사회에 구현하려는 진정한 학문을 방기하는 것이요, 그런 점에서 타기할 경향이라고 우려하였다.
③ 문장학: 유가에서 존숭되는 경전들은 본래 일정한 격식이 있는 것이 아니라, 표현의 내용을 개성적인 문장에 담아낸 것이다. 춘추전국이 지나면서 내용은 뒷전이고, 문장의 표현과 기교에만 몰두하는 경향이 계속 이어져 왔다. 사마천(司馬遷)과 양웅(揚雄), 유향(劉向)과 사마상여(司馬相如)는 말할 것도 없고, 이른바 당송 팔대가의 문장은 이 점에서 더욱 열악하다. 그들은 “안으로 몸을 수양하고 어버이를 섬길 수가 없으며, 밖으로 임금을 옳은 길로 보도하고 백성을 잘 다스릴 수가 없다.”고 하였다.
이들의 문장은 양주(楊朱)·묵적(墨翟)이나 노자·불교보다 더 해독이 크다. 왜냐하면 이들 이단(異端)은 어쨌거나 방법은 다르지만, “자신을 억제해 선을 행하고 악을 버리자.”고 주장하고 또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문장은 청대(淸代)의 파격적 사조를 모방해 인간의 정감을 한껏 부화(浮華)·격탕(激激: 심하게 뒤흔듦)시켜 일세의 이름을 얻으려는 부류들로 우글대고 있다고 비판한다.
④ 과거학: 허황하고 교묘한 말로 문장을 꾸며 벼슬길을 노리는 학문이 과거학이다. 이 학문은 박식하고 의젓하지만, 마음에는 인간과 사회 역사에 대한 절실한 고민과 모색이 없는 출세의 부류들을 양산하고 있다. 그래서 학문은 퇴폐하고 나라는 병들어 간다. 일본이 문학은 구이(九夷)에서 으뜸이고, 무력은 중국과 맞먹으며, 나라를 유지하는 규모와 기강이 잘 정비된 것은 다름 아니라 과거제가 없기 때문이다. 이 제도를 당장 고쳐야 백성들의 복이 될 것이다.
⑤ 술수학: 술수와 예언학도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재난을 피하고 복을 구하는 일에 동원된 참위와 풍수, 도교적 방술 등을 힘써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