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퇴계집』에 수록되어 있다.
정지운이 처음 동생과 성리학을 강학할 때 마땅한 교재가 없음을 한(恨)하다가, 스스로 『성리대전(性理大全)』과 『주자어류(朱子語類)』의 「인물지성(人物之性)」을 참고해서 우주와 인간을 관통하는 원리를 하나의 그림으로 압축하여 거기에 간략한 해설을 붙였다. 이 소략한 「천명도설」을 스승인 김안국(金安國)과 김정국(金正國)에게 보여 질정을 요구했지만, 함부로 논할 일이 아니라면서 후일을 기약하자는 대답을 들었다. 그럼에도 이 도설은 소문 없이 선비들 사이에 유포되었고, 이를 우연히 발견한 이황이 정지운을 만나 몇 가지 오류와 부적절한 대목을 지적했는데, 정지운은 아예 검토와 수정을 이황에게 의뢰하였다.
이황은 이 제안을 받아들여 “주자의 설에 기초하고, 여러 학자의 설을 참조해” 그림을 고치고 해설을 수정하였다. 후서의 전반부는 이런 저간의 사정을 차분히 적고 있다. 후반부는 한 과객이 이 같은 저작 행위의 정당성과 내용의 적실성 여부를 따지고, 이에 대해 이황이 답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과객이 성현(聖賢)도 아니면서 어떻게 외람되게 창작을 할 수 있느냐고 묻자, 이황은 이 저작이 주돈이(周敦頤)의 「태극도(太極圖)」와 『중용』의 취지에 따라 종합한 것일 뿐, 새로운 창작이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과객이 화를 내며 「태극도」가 5개의 층으로 이루어졌는데 이 그림은 단 하나뿐이지 않느냐고 따지자, 이황은 둘의 주안(主眼)이 서로 다르다고 대답했다. 즉, 「태극도」는 창조와 변화의 근원을 찾기 위해 방법적으로 5층으로 나누었을 뿐, 인물(人物)의 생성과 변화라는 구체성에서 그 그림들은 혼륜(渾淪)의 전체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다음 질문에서도 과객은 「태극도」와 「천명도설」의 차이를 음양(陰陽)과 인의예지(仁義禮智)라는 문자의 존재 여부를 두고 따졌고, 이황은 이에 대해 하늘에서가 아닌 인간의 현실을 보다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한 방법적 선택의 결과이지 주자학의 근본 원리를 다친 적은 없다고 대답했다. 그 다음 방위의 순서가 서로 틀린 것을 질문하고 대답을 듣는 과정에서 과객은 처음의 힐난의 기세를 조금 누그러뜨린다. 과객은 그림에서 나타난 이황의 인간학적 구상, 즉 심성정(心性情)과 선악의 갈림, 그리고 사단칠정(四端七情)의 구분에 대해 묻고, 수양에 있어 존양과 성찰을 관통하는 경(敬)에 대해서 물으며, 이황은 이 질문에 또한 자신의 이해를 요약해서 들려준다.
마지막으로 과객은 그렇다면 이황 당신은 자사(子思)와 주돈이의 경지에 올라섰다는 말이냐고 다그친다. 이황은 허허 웃음을 터뜨리고 나서, “성인은 하늘을 희구하고, 현인은 성인을 희구하며, 선비는 현인을 희구하듯” 나도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또 노력하는 사람이며, 「천명도설」은 그 같은 노력의 일환일 뿐이라고 대꾸하였다. 이 말에 과객은 부끄러움과 깨달음을 얻고, 문답을 기록하고 스스로 경책(輕責)했다면서 글을 마무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