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전라남도 곡성군 옥과면 옥과리 성황당에 있는 신상(神像).
내용
이 건물은 단칸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으며, 그 안에 남녀 목조신상 2구와 머리가 떨어져나간 동자석조상 1구가 안치되어 있다. 이 목조신상은 약 5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높이는 남신상 84㎝, 여신상 68㎝로 모두 앉아 있는 모습이다.
그 형태를 보면, 남신상은 무당들이 쓰는 모자를 쓰고 큰 눈썹에 눈이 튀어나와 있어 마치 장승과 흡사하다. 허리에는 흉대를 두르고 중앙에서 묶었는데, 그 띠가 발등까지 내려와 있다.
여신상은 머리에 고깔 같은 것을 쓰고, 얼굴이 남신상보다 정교하여 아름다우며, 모아쥔 두 손은 무엇인가를 들고 기원하는 모습이다. 이 서낭당의 유래에 이 고장출신으로 고려 신종 때의 학자 조통(趙通)과 관련된 설화가 전하고 있다.
조통이 고향인 옥과로 낙향하자 평소에 그를 사모하던 공주가 여기까지 찾아왔으나, 그가 가까이하지 않으므로 한을 품고 죽었다고 한다.
그 뒤 이 지역 무당들이 공주를 가엾게 여겨 죽은 그의 넋을 달래고 한을 풀어주기 위하여 공주와 조통의 모습을 나무로 깎아 한 자리에 모시고 해마다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옥과서낭당은 1914년 옥과현이 곡성군에 폐합되기까지 국행서낭당[國行城隍堂]으로서 현에서 제사를 지냈으며, 그 뒤에도 무당들에 의하여 제사가 계속되었으나 1930년경부터 중단되었다.
참고문헌
- 『문화재도록』(전라남도, 1981)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