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봉은 그의 호로, 본관은 전주 이씨이다. 왕실 종친인 군수 이봉지(李逢之)의 서녀로 태어나 승지를 지낸 조원의 소실로 들어갔다. 시 32편이 후손 조정만(趙正萬)에 의해 『가림세고(嘉林世稿)』에 실려 전한다. 『가림세고』는 조원·조희일(趙希逸)·조석형(趙錫馨)의 3세의 시문을 합하여 상중하 3편으로 만들고, 권말에 옥봉의 시를 부록하여 1704년(숙종 30)에 간행한 시문집이다.
「옥봉집」의 서두에는 “시문에 능한 시들이 많으나 흩어져 없어진 것을 애석하게 생각하여 여기 권말에 붙여둔다.”고 부록한 뜻을 밝혔다. 말미에는 조정만(趙正萬)의 발문이 있다. 시집 속에는 오언절구 10편, 칠언절구 14편, 오언배율 4편, 그리고 칠언배율 4편이 수록되어 있다.
「영월도중(寧越道中)」·「증운강(贈雲江)」·「칠석(七夕)」·「규정(閨情)」·「고별리(告別離)」 같은 시는 인구에 회자되었다. 「위인송원(爲人訟寃)」이라는 시는 이웃에 소도둑으로 몰린 사람을 대신하여 지어준 시이다.
“세숫대로 거울 삼고 물 발라 기름 삼아 머리 빗을지라도 내가 직녀가 아닌데 그대가 어찌 견우가 되리.”라고 하여 그녀의 재치를 보여 준다. 이 중에서 11편은 『황명열조시집(皇明列朝詩集)』에 수록된 것을 옮겨 놓은 것이다. 11편 중에서 「반죽원(斑竹怨)」과 「채련곡(採蓮曲)」은 이달(李達)의 시집에도 실려 있는 작품이어서 옥봉의 작이라고 하기에 의심스럽다.
「옥봉집」은 『조선역대여류문집(朝鮮歷代女流文集)』에는 그 전 작품을 활자로 수록하였다. 『역대여류한시문선(歷代女流漢詩文選)』에는 전역하여 수록하였다. 『금잔디』(金億)에서는 12수, 『꽃다발』(金億)에는 11수를 번역하여 수록하였다.